순교자 정용현목사

게시판 바보들의 이야기 순교자 정용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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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댁길이지 #3808

    댁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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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정용현목사
    순교자 정용현목사 :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 화면 캡쳐

    정용현은 1903년 2월 7일 황해도 은율에서 출생하였다. 비교적 여유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서당에 가서 한문과 논어까지 읽고 소학교에 들어가니 너무쉬워 두 번이나 월반하여 2년만에 졸업하고 민족의식이 투철한 신성중학교에 진학해 자연스럽게 민족사랑을 배웠다.

    기독교학교인 신성중학교 시절, 부흥회에 참석해 길선주목사의 설교에 영향을 받고 주의 종이 되기로 서원했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효심이 두터웠던 그는 신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연송소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아 부임해 10년 근무 후 1932년 30세에 평양유동교회의 교역자로 초빙을 받아 1년 교역하고 이듬 해 경성성서학원에 입학 1936년에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총회는 그를 사리원교회로 파송했다.

    1938년 신사참배에 마지막보루인 장로교가 무릎을 꿇고 1940년대 들어 기독교학교들이 속속 폐교조치되고 선교사들이 추방되는 등 동년에 침례교단이 해산당함을 시발로 성결교회도 1943년 해산되고 일본 기독교 조선교구의 지시를 받는 조합교회가 설립되어 동산교회에 파송 강단을 지키다가 해방을 맞아 장로교인 동산교회에 그대로 남아 장로교 총회에 예속되었다.

    1946년 11울 3일 주일선거에 앞장서서 반대했다. 그는 일제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지 못한 한이 가슴에 있었다. 주님을 두 번 십자가에 못박을 수 없어서 북한 정권의 기독교 박해에 반발한 것이다. 1947년 공산정권은 회유시킬 수 없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일제히 검거할 때 정용현목사도 평양 형무소에 투옥되어 계속 옥살이를 했다. 정목사는 평양형무소에 끌려가 전향을 회유받을 때마다 완강히 거부했다.

    “예수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내가 배반함으로 계속해 십자가를 지게 할 수야 있겠는가? 차라리 나를 죽여 주의 제단에 순교제물이 되게 하시오.”하며 강한 저항을 했다.

    1950년 6.25가 터지고 북한 탈환을 위해 평양에 진주한 국군들에게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평양 감옥에 불을 지름으로 소사하여 순교 반열에 들었으니 그의 나이 48세였다. 후예로는 1998년 원로로 은퇴한 정충원목사가 있고 그의 손자 정성민, 정성수도 목회자가 되어 순교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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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선한목자 순교자 정용현목사의 아들이자 정성민목사의 부친인 정충원목사는 한반도 남단 여수 앞바다 소록도 나환자 촌에서 목회하다가 은퇴했다. 허구헌날 우상숭배하면 지옥간다, 여러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도와야한다 는 등등의 말만 앞세우는, 토론토 바닥 먹사들, 부끄럽지도 않느냐 ?

    자기의 인생을 건다는 건 참으로 외롭고 위대한 일이다.

    그 아들 정성민 목사는 어려서 보고 배운 것, 머리 속에 박혀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토론토 한인 기독교도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기회이다.

    토론토 한인교회 목사들, 이 친구들과 정목사는 비교 불가, 끕(Level)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제 구라먹사 세치혓바닥의 장난질에 아니라고 거부하자.

    그리고 행동으로 보이자, 떠나자.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난 그대로 구라의 소굴에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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