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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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마을주임 #3865

    새마을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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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약 4년전에 모 포털에 기고한 글입니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갈 만큼 힘들다는 성경구절에서, 낙타가 아니고 밭줄인데 원어가 잘못해석되었다는 “울트라”라는 분의 논지의 글에 대해 바보스쿨이 답변한 글입니다.

    이글에서 “나”라는 표현과 겸양의 표현이 들어 가 있지 않은 종지법을 쓴다는 것을 읽는 분들께 먼저 양해를 구한다.

    먼저 바보스쿨 게시판 교회안의 흔한에러에 포스팅된 “하나님이 천지를…” 이라는 글을 복사함으로 이글을 시작한다.

    창세기 1장 1절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 첫 마디이다. 창세기를 쓴 사람은, 지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이래서, 신앙생활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내가 믿는 기독교의 텍스트 북 첮장 첮절에서 허구가 들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쓸 수 있는가.

    방언이나 하고 선행이나하고, 기도 열심 봉사열심,,,,,, 이런 것들이 신앙생활의 전부이고, 그런 것들을 잘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믿음 좋은사람”이라고 말한다. 만일 그것이 기독교의 실체라면, 기독교는 너무나 쉬운 종교이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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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줄 아니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고도 남는다. 밭줄의 직경이 얼마나 되는 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의 관념에 자리잡은 받줄은 그 옛날 학교 운동회 마지막 이벤트 줄다리기에 쓰는 동아줄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어세계에 있는 정의 일것이다.

    그런데 그런 받줄은 물론 낙타가 한마리가 아니고 서너마리는 함께 그 바늘귀에서 동시에 들어가 산책을 즐길 수가 있다.

    이것은 20세기까지는 진짜 불가능했다. 아니 불가능으로 보였다. 그러나 2차대전에서 대양을 누비던 craft carrier – 항공모함 – 의 엔진을 한번 생각해보자, 아니 가깝게 현대중공업 대우 조선소에 가서 기백만톤 짜리 crude oil tanker 엔진 거는 것을 보자. 바늘귀가 별건가요, 쬐끔 큰 바늘 구멍이 엔진 구멍이지 별건가요. 그 바늘 구멍을 들날락하는 피스톤의 운동에너지를 전달하는 쬐끔 큰 쐬떵어리 실이 커넥터가 그 쯤 안되나요.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의문을 품어 왔다. 여기 울트라님 처럼. 단순한 단어 오역 뿐만아니라 딱 한번 일어난 사실에 대해서도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이 즉 성서기자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가 나중에 저렇게 이야기를 뒤집어 버리는 무협지 이야기만도 못한 이야기 구성능력에 심한 회의를 가져왔고 지금도 내마음에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여기서 이런 나를 보고 믿음이 있다 없다 강하다 약하다 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봐 왔는데, 나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반문한다.

    니가 예수냐 ?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된다라는 견해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예수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밭줄이든 낙타든 바늘 귀로 못 들어간다. 문제는 수백기의 뱅기를 싣고 대양을 누비던 20세기를 거쳐 기백만톤짜리 유조선을 만들어 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도들은 1세기 사람들 대갈통을 그대로 나의 대갈통으로 유지하려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예수가 갔던 좁고 협착한 길에서 언제나 밖으로 튀어 나가려 몸부림치는 잡단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목사색희들이다. 우리의 대갈통은, 그 색희들의 똥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대갈통에 너무도 오랫동안 노출되어 판단력 상실이라는 증세에 허덕인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는 바늘은 어떤 것이라고 정의하지 않았다. 또한 못 들어 간다는 말도 안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힘들다는 말이 종속절로, 낙타/밭줄 바늘이야기가 주절에 위시킨 이유가, 나는 성서기자가 원래 주절이어야 할 부자 천국 절을 종속절에 위치킴으로 강조의 효과를 배가 하려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만일 글자 그대로 읽어 이해하려한다면 이마저도 21세기에서는 약빨이 덜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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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해문서 혹은 마그함마디 문서는 예수 살아계실 당시 200년 내지 100년 앞서 쓰여졌던 책들이다. 그것들에 대한 기존 기독교 목사셰이덜을 물론 신학자들이라는 잡넘들,, 변변한 논문한장 보았는가 ? 그렇게도 오매불망 예수 예수를 입에 달고 사는 샊희들이 정작 예수 살아계실 당시에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쓰여졌던 책들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안한다. 왜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평생 쌓아 온 밥줄인 알량한 성경 지식 자체가 뿌리부터 붕괴되기 때문이다. 워낙에 평생을 개구라를 씨부려 놓았기 때문에 쓸어 담기는 커녕 이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러다가 울트라님처럼 반짝이는 이성으로 한번 대드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벌떼같이 몰려와서 믿음이라는 요술방망이로 집단 린치를 가하여 교회 밖으로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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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하게도 이글의 결론은 읽는 분들 각자에게 있다. 내가 결론을 내리면 또 다른 쟁론이 될까하여, 횡설수설로 남겨두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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