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른 길을 가다 – 여수은현교회 김정명목사

게시판 바보들의 이야기 그러나 다른 길을 가다 – 여수은현교회 김정명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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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댁길이지 #2844

    댁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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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다른 길을 가다… 예수의 길, 십자가의 길… 이 글 끝부분에서 교통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한 딸이야기와 신장을 기부한 이야기에서 예수와 겨루는 처절한 그러나 지혜로운 한 인간, 양심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은 통해 보여준 좋은예를 봅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에서 퍼온 “조용기 목사와 같은 교단, 그러나 다른 길을 택하다” 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82002&cmpt_cd=A0286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반공친미’ 목사다. 특히, 북한 정권의 권력세습을 규탄하는데는 쌍심지를 켜고 앞장선다.

    지난 2006년, 그런 김홍도 목사는 자신의 아들(김정민)에게 금란교회 목사 자리를 세습했다. 마치 김일성 일가의 뒤를 따른 듯하다. 묘한 것은 그것이다. 마귀와 싸우다 보면 마귀를 닮는다고 하던데, 북한 정권의 못된 수법을 형편없게도 따라 했다.

    이명박 장로가 출석하는 교회 또한 그렇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는 재직 당시 자신의 교회에 부목사로 두었던 아들(곽요셉)에게 변칙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지어줬다.

    곽 목사는 소망교회 담임목사 은퇴를 앞두고 분당에 200억 원대 교회(예수소망교회)를 지으면서 소망교회 돈 130억 원을 지원해 변칙세습 논란을 일으켰다. 곽선희 목사 또한 북한의 세습정권을 저주한다. 그런데 못된 짓을 따라 했다.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권력세습 대신 정년연장이란 꼼수를 택했다. 조 목사는 2006년도에 70세로 정년퇴직해야 했다. 하지만, 교인 99.8%가 원했다면서 75세까지로 정년을 연장했다. 조 목사는 김홍도, 곽선희 목사처럼 자식들에게 목사자리를 세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민일보> 경영권을 비롯한 순복음재단의 재산 싸움과 권력 투쟁에 일가족이 뛰어들어 혼전을 벌이면서 사회적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의 끝없는 탐욕에 대해 예수는 뭐라고 할까? 예수는 그렇게 행동했다. 만민이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교회)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종교권력자와 장사치들을 채찍으로 내리쳐 엎어버리고 내쫓았다. 그랬던 것처럼 그 목사들에게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며 분노할 것이 틀림없다.

    피 냄새나는 남녘… 시골교회 그 목자

    그 목자는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사죄하러 월남에 갔다.
    그 목자는 가난한 유목민들을 보살피려고 몽골에도 갔다.
    그 목자는 맨발의 영혼 불가촉천민을 위해 인도에도 갔다.
    그 목자는 굶주린 동포들의 밥이 되기 위해 북한에도 갔다.
    그 목자는 가야만 한다, 예수가 부탁한 곳으로 가야만 한다.

    시골교회 그 목자는 비전향장기수들의 친구였고
    시골교회 그 목자는 금강산 안내원들의 동무였다.
    시골교회 그 목자의 고통은 여순사건의 찔림이었고
    시골교회 그 목자의 슬픔은 오월 광주의 눈물이었다.
    시골교회 그 목자는 민주주의로 쓰러진 이들의 동지였고
    시골교회 그 목자는 권력에 영혼을 팔지 않은 선지자였다.
    시골교회 그 목자는 문수동 영구임대아파트 덕충동 몬당
    산동네 역전 하꼬방 종포 갯동네 가난에 지친 이들의 양식이고
    삶에 지쳐 우는 늙은 어미의 인생을 보듬고 애통하는 눈물이다.

    시골교회 그 목자는 엔간찮은 바보 목자다.
    어떤 목사들은 없는 자리까지 만들어 행세하고
    어떤 목사들은 있는 자리는 더 높여서 차지하고
    예수 팔아 바벨탑을 쌓고 부자가 되고 외제차를 타는
    악하고 악한 이 시대에 그 야트막한 자리조차 내 놓고
    목자의 인생이 부끄럽다며 떠나는 예순 목자의 몸에선
    진짜 예수 냄새가 난다 오, 그 가냘픈 목자의 눈망울에선
    외로운 사내 예수가 보여 그 목자의 발걸음 발걸음마다
    그 사내가 흘리고 간 붉은 핏물이 뚝뚝뚝 떨어지고 있다.

    시골교회 목자의 신발은 흰 고무신이다.
    사시사철 성경 읽고 기도하며 묵상하던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던 목양실 문 앞
    가지런히 벗어 놓은 외롭고 쓸쓸한 생애다.
    의로운 신을 신고 가시밭 길 가던 그 고난이다.
    고난의 길을 걷다가 핏물로 찍었던 그 발자국이다.
    청빈의 몸을 입어서 아예 가난과 일치된 무소유다.
    육신의 땟자국 날마다 씻어주신 그 하나님과 함께
    나의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 은혜여서
    안락의 땅을 떠나라고 명하시니 고무신 벗고 떠난다.

    – 조호진, <조기 은퇴하는 김정명 목사님께 드리는 헌시(獻詩)> 중

    조용기 목사와 같은 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소속 김정명(63·여수은현교회) 목사는 조 목사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김 목사는 정년 연장은커녕 60세에 조기은퇴로 담임목사 자리에서 내려왔다. 2003년 총회장까지 지난 김 목사는 자기 비움과 자기 부인 등의 이단적(?) 행동 때문에 교단에서 왕따가 된 적도 있다. 예수 가르침대로 살면 찍히는 게 한국 교회의 수준이고 풍토를 보여준다.

    2009년 9월에 물러났으니 조기 은퇴한 지도 2년이 지났다. 목사들은 은퇴하고도 섭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는 멀리 떨어졌다. 그저 바닷가 산속에 소박하게 지어진 ‘기도의 집’에서 책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며 수도승처럼 지낸다.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다. 대신 산새와 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그는 외로움을 즐긴다. 교회에 매달릴 땐 깨닫지 못했던 진리를 깨우치는 재미가 크단다. 수도와 묵상을 통해 하늘의 뜻을 새긴단다. 그는 담임목사직에만 매달렸다면 ‘자기 부인’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묵상과 자기 성찰을 통해 예수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고백한다.

    그는 흰 고무신을 즐겨 신는다. 아침은 몇 년째 금식 중. 현직 시절엔 교회가 사주겠다고 한 고급 승용차를 마다하고 교회 봉고차를 이용했다. 퇴임 이후엔 소형 경차를 몬다. 그는 불편을 자청했다. 겨울엔 연료를 아끼려고 찬 곳에서 책을 읽고, 여름엔 무더위를 참는다. 불편한 생활을 자처했고, 이젠 몸에 뱄기 때문에 더 이상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김 목사는 주일이 되면 성매매 여성들의 쉼터를 찾아가 예배를 인도한다. 실제 교회는 성매매 여성들의 예배를 허락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교회에서 ‘손님’들을 만나는 불상사가 우려되기 때문이란다. 또한, 김 목사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돕는 일이나 시민운동가들에게 힘을 보태는 일도 간간이 한다. 그리고 몽골, 인도, 캄보디아, 북한 등의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사역을 위해 먼 길을 나선다.

    친인척 목사는 접근 금지… “목회자로서 부끄러워 조기은퇴”

    김 목사는 여수은현교회에서 30년 넘게 목회자로 살았다. 그동안 여러 가지 사건사고를 겪었다. 장로가 예배당 신축 부지를 저당 잡혀 먹고, 교사강습을 다녀오던 중에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에 교인이 죽거나 장애인이 되고, 1987년 6월엔 교회가 항쟁본부가 돼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여수은현교회는 시련을 겪었지만, 교회가 부흥하면서 교인이 2000여 명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그는 교회의 본질과 거꾸로 가는 교회 성장을 반대했다.

    한국 교회의 교인 숫자가 줄고 있다. 다만 대형교회들은 중·소형 교회 교인들을, 중·소형 교회들은 개척교회 교인들을 흡수하고 있다. 그것은 부흥이나 성장이 아니라 ‘시장 쟁탈전’이다. 그는 교회의 탐욕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교인이 늘어나면 부목사에게 예배당을 지어주고, 운영비까지 쥐어주면서 분리 독립시켰다. 타 교인들이 오면 등록을 받아주지 않았다.

    한국에서 성공한 목회자란 무엇일까? 바로 개척 교회를 중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예수의 진리는 중요치 않다. 성공한 목회자의 힘은 자수성가한 기업체의 회장 못지않다. 결국 교회를 사유화시킨 대가로 부와 권력 놀음을 벌이게 된다. 그런 왕 같은 목사직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왕조처럼 그 왕위 같은 담임목사(당회장) 자리를 자식이나 사위, 형제 등에게 세습하고 교회 돈을 빼돌렸다가 감옥에 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의 맏사위와 동생도 목사다. 세습하기 좋은 조건이었지만 딸과 동생을 교회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는 후임 목사를 공개 청빙하면서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무소유 할 것’ ‘하루에 3시간 이상 기도할 것’ ‘정직과 나눔과 섬김을 실천할 것’ 등이었다. 대신 교단과 연줄 등은 상관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교회들이 목사를 청빙할 때 고려하는 첫번째 조건은 같은 교단 소속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력과 경력 등도 거론되지만 실제로는 장로들의 입김에 의해 청빙 결과가 좌우된다.

    그의 후임목사 청빙 방법은 한국 개신교계에서 혁명적이었다. 서류심사를 통해 예선을 거친 3명의 후보자들을 상대로 제비뽑기를 해서 후임목사가 결정된 것이다. 청빙 조건은 자신이 제시했지만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에서였다. 30년 경력의 담임목사가 스스로를 배제시킨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 목사와 전혀 상관없는 경상도 출신의 장로교단 소속의 최규식(50) 목사가 후임 목사로 정해졌다.

    그에게 “왜 조기 은퇴했느냐?”고 묻자 “부끄러워서”라고 답했다. 또, 목회자로서 능력이 다했다고도 했다. 이어 “이런 길을 왜 선택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그는 “나의 본향(本鄕)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진짜 예수쟁이는 누구냐?”라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재철 목사를 존경한다. 그는 자신이 약속한 대로 ‘주님의교회’ 담임목사를 10년 채우고 그만뒀다. 대개 말들은 그렇게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는 가난한 교회와 어려운 일을 선택한, 자기를 부인할 줄 아는 진짜 목사다. 예수는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했는데, 한국 교회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목사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농어촌에는 예배당을 묵묵히 지키는 목사들이 있다. 이분들은 사례비(월급)도 거의 받지 못하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며 산다. 농어촌 목회자들이야말로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믿음 좋은 사람은 많지만 예수쟁이는 별로 없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소리만 지르니 ‘개독교’ 소리를 듣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려면 좁은 길로 가야한다. 뇌물 받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불의가 아닌 정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으면 어떠냐. 너무 많이 누리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예수를 닮으려고 애썼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조기 은퇴했고 그분을 닮으려고 훈련 중이다. 그분과 대화하면서 지내는 게 즐겁다.”

    게릴라전 펼치고, 잘 살지 말라고 질책하는 목사

    김정명 목사는 금강산 안내원 동무들과 몽골에 파견된 외화벌이 동무들에게 인기가 좋다. ‘축복이 아버지’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축복이(10) 아버지 이재룡(67)씨는 6.15 공동선언에 따라 2000년 9월에 북측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다. 축복이는 북한으로 송환돼 결혼해서 낳은 딸인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름을 직접 지어준 사연이 북측 언론에 보도되면서 ‘축복이 아버지’는 유명인사가 됐다.

    여수은현교회는 이재룡씨를 비롯한 비전향장기수 63명이 송환되기 전까지 영치금을 지원했고, 부활절과 성탄절이 되면 선물을 보냈다. 송환을 앞두고는 이씨를 비롯한 4명의 장기수들이 교회에 찾아와 이별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대북 지원 단체인 (사)하나누리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 목사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기 전만해도 금강산을 자주 찾았다. 교인들과 함께 금강산을 찾아갔는데, 단순한 관광이 아닌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금강산에 도착하면 교인 40~50명에게 각각 배낭을 메게 하는데 그 배낭 속엔 겨울 내의, 치약 등의 생필품이 담겨 있다. 김 목사와 교인들은 식당이나 상점에 배낭을 슬그머니 놔두고 오면 안내원 동무들이 가져간다. 김 목사가 게릴라 전술을 채택한 것은 물품을 절실한 동무들에게 전하려는 의도와 함께 가난한 이웃들을 도울 때는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속 깊은 배려 때문이었다. 그건 예수가 가르쳐준 전술이다.

    그 전술은 몽골에서의 장학사업과 ‘밥퍼’ 사업, 인도의 불가촉천민을 돕는 일에서도 그대로 사용됐다. 최근에는 베트남에서 가난한 인민들의 집을 지어주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교인들에게 그는 현직에 있을 때나 퇴임해서나 무거운 십자가다. 시골교회가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가난한 이웃 나라와 북한 돕기, 시민운동 지원, 가난한 이웃돕기 등의 구제 사업을 꾸준히 추진한다.

    은현교회 교인들은 매월 1일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 한 끼 금식으로나마 어려운 이웃의 삶을 생각하고, 금식한 한 끼 값으로 북한 동포들을 돕는데 보탠다. 김 목사는 설교 때마다 잘 입고, 잘 먹고, 잘사는 삶을 호되게 질책한다. 예수를 믿으려면 덜 입고, 덜 먹고, 덜 누리며 살라고 꾸짖는다. 다른 교회들은 부자들을 우대하고 빈자들을 천대하지만, 김 목사는 거꾸로 대했다. 그래서 부자 교인들은 잠시 들렀다가 떠났다.

    실명한 작은딸에게 내 눈을 빼주고 싶었다

    김 목사의 작은딸(32)은 2010년 5월 교통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했다. 오른쪽 눈은 흐릿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작은딸은 실명의 충격 때문에 정신과 폐쇄 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김 목사는 “이웃의 생명을 살리긴 했으나 딸의 눈을 살리진 못했다”며 “내 눈을 딸에게 주려고 했는데 딸의 눈에 신경이 손상됐기 때문에 불가능했다”고 눈물 흘렸다.

    그는 자신의 한쪽 신장을 떼어내 한 생명을 살렸다. 또한 두 아이를 입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 충성한 목자인데 왜 이런 일(작은딸)이 벌어졌는지 물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교통사고 당하지 않고 두 눈을 뜨고 보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그걸 모르고 살았다. 딸이 교통사고로 실명당하는 것을 보면서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하지만 고민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사랑하는 딸이 실명한 것은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일일 뿐이다. 나는 아버지로서 작은딸이 불편함 속에서 위대한 삶을 살도록 도울 것이다. 하나님이 불편함 속에서 위대한 삶을 살도록 도울 것을 확신한다.”

    그에게 또 물었다. “악이 판치고 선이 신음하는 세상, 권력을 쥔 불의한 자들이 선한 시민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세상…. 하나님이 계신다면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돌아가겠는가?”라고. 항의하듯 물었더니 그가 입을 열었다.

    힘이 판치는 세상을 보면 그들이 이기는 것 같이 보인다. 총회선거에서는 탐욕에 붙잡힌 교회 지도자들이 돈 봉투를 돌려서 권력을 쥔다. 교회에선 사기꾼과 불의한 자들이 장로도 되고 집사도 된다. 또 십일조와 건축헌금을 많이 낸 사람들이 우대받는다.

    어떤 목사들은 그런 그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면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천국은 그렇게 싸구려로 갈 수 있는 데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온갖 것을 다 누린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 버려질 것이다. 산상수훈에서처럼 그 나라는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사람들이 갈 수 있다.”

  • 글쓴이
    답변
  • 클루니     #2848

    클루니

    귀감이 되네요~ 잘 읽고 갑니다.^^

  • 바른삶     #2847

    바른삶

    요즘 교계 목사중 보기드문 천연 기념물이외다

  • 댁길이지     #2846

    댁길이지
    Participant

    김목사,, 그분의 딸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전라도 여수판 “욥”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릅니다. 댓글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부끄러워     #2845

    부끄러워

    요즘 흔한 무당같은 목사들판인데 아 그래도 작은 예수님 같은 분이 있군요
    좁은길 십자가의 길을 몸소 실천하시는 귀한 분이 있음에 나 또한 부끄러울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도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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