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한인교회-한석현목사-설교비평-오직 성경

오직 성경 – 본한인교회 한석현목사 – 설교비평 written by 순두게

새로워진 바보스쿨, 순서상 “오직 성경 – 본한인교회 한석현목사 – 설교비평” 이렇게 제목을 달았습니다.

이글을 쓰는 필자는 물론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한석현목사(이하 한목사)에게 두가지 면에서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

첫째는, 어떻게하면 뻔뻔한 삶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살 수 있을까 ? 살아가면서 항상 의아해하게 생각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어떻게하면 지가복음을 읽고 지가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편의상, ~습니다, ~읍니다, ~니다 등으로 문장을 매조지하지 않음을 양해 바랍니다.

성서해석 – interpretation – 즉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해석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밝히 깨닫게 하는 마당이 설교이다.

해석은 커녕, 말씀조차도 허투로 읽어내는 한목사의 성경읽기에 필자는 그저 연민의 정이 들 뿐이다. 이 설교비평에 대한 댓글은 열려 있다. 필자가 틀렸으면 왜 틀렸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면 대환영, 필자는 언제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

본문말씀 – 에베소서 2:19-22

한글 개역개정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NIV 성경
19Consequently, you are no longer foreigners and aliens, but fellow citizens with God’s people and members of God’s household, 20built 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 with Christ Jesus himself as the chief cornerstone. 21In him the whole building is joined together and rises to become a holy temple in the Lord. 22And in him you too are being built together to become a dwelling in which God lives by his Spirit.

King James 성경
19Now therefore ye are no more strangers and foreigners, but fellowcitizens with the saints, and of the household of God; 20And are built up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 Jesus Christ himself being the chief corner stone; 21In whom all the building fitly framed together groweth unto an holy temple in the Lord: 22In whom ye also are builded together for an habitation of God through the Spirit.

한목사의 오늘 설교 40여분 중에, 처음 30분은 인간의 이야기(즉 잘나가는 비즈니수맨, 장군 구케의원 등등)와 먹사들의 전매특허 봉사/섬김/순종 같은 어휘가 별로 없다. 아 – 하나 빠졌네 성령,,, 다른 4개(서부장로,밀알,영락,큰빛) 교회목사들과 구별된다(적어도 필자가 들어본 설교로 제한한다면 그렇다는 얘기고요 전체를 다 들어보면 제 말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바보스쿨이 부르짖는 바 – 성서에 충실하자에 피상적으로나마 어느 정도는 부합한다.

그렇지만, “본질에서 확실하게 벗어 나 있다” 는 필자의 판단이다.

다른 4개(서부장로,밀알,영락,큰빛) 교회목사들처럼 요절이나 읊어대고 비즈니수맨, 장군 구케의원 이야기나 떠벌이고 죄니 뭐니 봉사/섬김/순종/성령 같은 어휘로 도배하지 하지 않은 것까지,, 바로 요기까지이다. 그의 오늘 설교는 “잘 준비된 설교” 라고 말 할 수 없다.

인간의 이야기에서 성서로 돌이켰다면 이젠 내용, 본질이다.

누가 이런 말을(feedback) 그에게 해주겠는가 ?

바보스쿨에 감사하십쇼. 사실 그 교회 교인들 체증 뚤리는 분들 꽤나 있을 껄요. 매주 일요일이 괴로운 남자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광신도 아내 따라 가긴 갔는데 화딱지 팍팍나는 사람들… 돈내고 열받는 남자들,,, 어디 그것이 본한인교회 교인들에게만 해당되겠는가 ?

졸업덜허셔.

교회놀이 고마하자.

나는 이글을 쓰기 위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체독한 후, 한목사의 “오직 성경” 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적어도 10번이상은 반복해서 들었으며 일정 구간은 그 이상을 반복해서 들었다. prophets(프라핏스: 선지자들 복수형태)를 prophet(프라핏: 단수형태)로 그가 발음한 유튜브 동영상 구간은 속도를 줄여 몇번이고 들어 보았다. 필자의 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 필자의 이 비평이 마음에 안들면, 필자만큼은 않되더라도 어느 정도 정열을 쏟아 부으신 다음에 필자를 힐난한다면, 너무 감사할 수 밖에. (필자를 씹으려 이것 저것 뒤적이고 성경을 꼼꼼하게 읽다보면, 필자를 힐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맑은 이성은 당신들이 몰랐던 것을 깨우칠테고 나는 당신들의 맑은 이성을 믿거든.)

오늘 설교에서 한목사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fact) 진술했다.

이 설교 처음 10분에 걸쳐,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설명하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해 받으신 후 로마의 디도 장군이 다 부숴버린 후 유대인들에게는 지금껏 성전이 없다고 한목사는 말한다. (7:10-30 이건 성경 장절이 아니라 동영상 경과시간 7분 10초 부터 30초까지)

한목사의 이러한 설명에, 그의 기억력, 지적 능력 그리고 양심이라는 것들에 대해 필자는 회의적이다.

본한인교회 악사 일부
본한인교회 악사 일부 : 본한인교회 웹사이트 화면 캡쳐
본한인교회 약사 일부
본한인교회 악사 일부 : 본한인교회 웹사이트 화면 캡쳐

이 그림에서 과거 10여년전부터 한번도 아니고 두번에 걸쳐 일어났던 “성전건축”은 뭔가 ? 필자의 물음이다. 예수의 예언 그대로 완전 파괴된 성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성전, 옛 예루살렘 성전 대신 그 터 위에 세워진 이슬람 모스크 라고 말하는 한목사와 교인들께서는 필자의 물음에 어떻게 설명하시려나 ?

그랬다, 그 시절 있지도 않은 성전건축한다고 설레발친 거 두번씩이나,,,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본한인교회 교인들아, 그 때 돈 털린 여러분들아~~~ 이 설교 듣던 그 장소 그 시각에도 쓸개는 다 안녕덜하셨져 ?

그의 설교는 계속된다.

예루살렘 성전은 차별의 상징물이었다, 예수께서 세우시겠다던 성전은, 요한복음 2장 저자의 주석대로 그것은 3일만에 세우겠다던 그 성전은 자기 자신의 육체를 가리킨다, 상징적이고 놀랍고 깊이 있는 말씀의 참 의미가 무엇인가 정말 예수님께서 지으시려던 성전이 어떤 것인가, 2장 11절 이하는 그런 모든 차별을(유대인, 이방인, 위에서 말한 직분/신분) 자신의 몸으로 폐하던 모습을 그린다고 한목사는 말한다.

모든 차별이 철폐된 후에 태동되는 공동체 즉 시작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설명이 오늘 본문 말씀이라고 한목사는 말한다.

예수가 교회를 만들었다는 성경기사는 단 한 줄도 필자는 알지 못한다. 모든 차별의 상징인 성전을 없앤 예수가 또 다시 구라와 차별의 온상인 교회를 만든다 ? 필자는 혼란스럽다. (12:10)

교회는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세례”를(14:10) 통해 시민권자가 되어 세상사람들을 교육해라 라고 한목사는 말한다.

예수께서 제정하신 세례라,,,, 그럼 세례 요한은 ?? 이름마저 세례 요한인데, 예수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이 설교를 계속 들어야 하나, 착잡함이 필자에게 몰려왔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교파에 상관없이 성찬식에 참여한다고 자신이 선포한단다(17:55) 그러니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한 식구이기에 차별할 수 없다고 한목사는 말하는데, “그 안에서만 차별이 없다”는 한목사의 판단으로 필자에게 들려온다.

차별이라,, 필자의 국어사전에는 差別 다를 差 나누는 別 이란다. 뭐가 달라도 달라서 구별지어 나눈다는 뜻의 한자어 차별 – 差別 인데,,,,,,

필자는 묻는다, 세례를 받은 사람과 안받은 사람, 시민권자와 영주권자 이건 차별 아니고 뭔가 ?

필자의 이러한 물음에 그 교회 웹사이트는 대단히 아름다운 답변을 준다.

“삶의 나눔”이란 게시판은 승인된 사람아니면 열람이 불가능하다.

본한인교회 웹사이트 게시판 "삶의 나눔"
본한인교회 웹사이트 게시판 “삶의 나눔” – 승인이 요구된다… 차라리 없애버려 !!

이건 차별아닌가 ? 이건 철폐 대상에서 예외인가 ?

필자가, 본한인교회 한석현목사와 교인들에게 질문한다.

예수 믿을라면 승인받고 믿어야 하나 ?

성경 어디에 승인받으라고 쓰여있는가 ?

필자가 읽은 복음서는, 유대인들에게는 한발작도 들이밀면 않되는 철천지 웬수들의 땅인 사마리아 땅으로 처연히 걸어가 샘물가에서 여인에게 물을 얻어 마신 예수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하여 진짜 “차별”의 벽을 허물었던 예수, 당신들이 믿고 따르겠다고 통성기도 허벌나게 외쳐대는 예수, 한목사가 오늘 말하는 차별의 상징 성전을 철폐한 그 예수 맞소이까 ?

당신들이 추종한다고 입에 거품물고 외치는 예수는, 자신에게 좀 불편한 말을 한다 하여 대문을 걸어 잠그는 그런 밴댕이 소갈머리 소유자가 아님을 알라.

누군가 당신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 – 그러나 몸에 좋은 쓴소리, 그게 두려운가 ? 그래서 너댓명만이 게시판 도배하도록 하시나 ?

한목사는, 하나님 나라, 가족,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는 여러분 몸이고 바로 성전이다라고 말한다. 개신교도인 필자는 적어도 이 말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이 과거 설레발 쳤던 성전이라는 게 지금와서 보면 완벽한 구라였음을, 그냥 공구리공사였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토하는 한목사, 구역질이 난다.(18:30)

한목사는, 오늘 본문 에베소서 2장 19-22 영어성경을 들이대며 설명했다.

그가 들이 댄 영어성경 21절은 the whole building is 즉 3인칭 단수 현재인데, 그는 복수로 해석하여 세상 모든 교회들(을 상징한다)이라고 한목사는 왜곡해석한다.(22:30)

그의 해석대로라면, 성서기자는 all the buildings are 라고 복수명사와 그에 따른 be동사 are를 사용했을 것이다.

다시말해, 성서기자의 머리속에는 예수가 머릿돌이되어 구약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이라는 기초가 서로 짜맞추여져, 그 위에 화장실도 짓고, 이방인 뜰로 내려가는 계단도 좀 맹글고, 안내 kiosk도 좀 만들고 하는 등등의 성전 건물 전체에 대한 그림이 에베소서 기자의 머릿속에 있었으며 그것이 바로 이 문장으로 기록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NIV/KJV 두 성경 똑같이 3인칭 단수 is(NIV) 와 groweth(KJV:growes)로 표현했다.

아마, “건물마다” 요로코롬 번역된 한글이 한목사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 일으킨 듯 필자에게는 보인다.

그가 들이 댄 영어성경 에베소서 20절은 the apostles and prophets 즉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한글 성경도 번역했는데, the apostles and prophet 이라고 말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오늘 본문의 에베소서는, 대충 대충 읽어도 항상 재미만 있는 만화책이 아니다. 더군다나 프로가. (내말이 믿기지 않으시나요 ? 동영상 25분 무렵부터 단 20초만 들어 보셔, 여러분의 귀는 지극히 정상작동한다는 것을 나는 믿소이다)

한목사는 “성서학적”이란 말까지 곁들였다. 그가 읽은 성서학 책은 말씀까지 다 바꾼 책인가, 그렇다면 내다 버리심이.

처음에는 the apostles and prophets 라고 정확하게 읽어 the(관사)가 두번 안나오고 한번만 나온 이유, 즉 the apostles and the prophets아니고 the apostles and prophets 로 기록한 이유를 설명한 한목사, 그러나 그 후에는 prophet을 단수로 생각하여(실제로 한목사는 prophet 단수로 읽었다) 예언자 역할을 하는 사도들이라고 설명해냈다.

필자가 보기엔, 이건 명백히 틀린(wrong) 설명이거나,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이 틀린 번역이다.

필자가, 이 문장을 이곳 토론토에서 30년 고등학교 교사로서 봉직하신 분께, 물었다. 그분은 성경 번역대로 “사도들과 선지자들”로 이해한다고 했다. 토론토 대학 출신인 그분께 필자가 묻기를, 만일 토론토대 철학과 나왔다고 하는 사람이 저런식으로 해석했다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 어떤 답을 하셨는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리다.

그리 길지 않은 성경 본문, 한목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의심하고 확인하지 않았다는 추측이 강하게 밀려온다.

그럭저럭 30분이 흘러갔고, 그런 성전은 교회는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면서 느닷없이 오늘 제목 “오직 성경”을 한목사는 말한다.

그러니 말씀을 읽어야 한다, 심지어 이걸 잘하기 위해서는 렉시오 디비나 방법을 통해 묵상해야한다, 자녀들이 묵상하면 상상력인지 뭔지가 좋아져서 좋은 직장에, 그 직장에서 장수한다 – 더 이상 구역질이 나서 무슨 말을 했는 지 정확하게 확인하기도 싫다.

아니, 가정집에서 대여섯 가정 모여 그야말로 가정교회정도로 이제 막 싹이 돋아 어렵사리 자리매김하는 그런 1세기 에베소 지역 상황인데, 신약성경이 어디 있으며, 복음서는 에베소서가 쓰여진 후 적어도 20년 후에나 세상에 나오는데, 왼 느닷없이 성경, 물론 오늘날에 빗대서 말한거라 긍정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너무 심하다.

필자는 바울 서신 에베소서를 읽을 때면 가슴이 아려온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는 내 생각이 꼭 맞다라는 생각은 없다. 각자의 다른 생각이 있을테니까).

에베소, 거기는 소아시아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방으로 가는 길목이었고 아래로는 지중해쪽에서 북상하는 무역로와 만나는 항구도시였다. 즉 동서남북 교차점이자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의 수도였다. 사람이 많이 모인 큰 도시라는 얘기.

에베소는 청동기시대부터 아르테미스(사냥 잘하던 여신 – the temple of Diana) 신전이 있던 도시였다. 바울도 아마 먼 발치서나마 신전을 감상했었을 것으로 필자는 추측한다. 필자의 추측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사도행전 19장인가 어딘가 누가의 진술을 보면,

기독교가 성행하여져서 은장색하는 사람들이 굶어 죽겠다고 아우성치던 사건. (사실 이것도 좀 구라가 낀 것 같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당시 기독교가 부흥되었으면 얼마나 되었다고 한 지역의 지역경제에 영향을 줄 정도로 그저 엄살한 것에 누가의 과장이 좀 들어갔겠지.)

대여섯 가정 모여 이제 막 싹이 커가던 에베소 지역의 가정교회들, 어마어마하면서도 우아한 아르테미 신전, 거기에 몰려드는 사람들,, 그 길목에서 아르테미 여신 목각상을 팔아 돈 벌던 사람들……

바울이 진정 이 편지를 썼다면, 아마 그의 머리속에는 오늘날로 치면,

빚 와장창 내서(큰빚교회) 하나님 빚쟁이 확실하게 만든 이웃 대형교회들(본한인교회 당근 포함이지), 이들에게 교인들 다 뺏겨버려가는 어떤 작은 교회 목사가 남은 교인들을 향하여, 성전은 바로 그런 개만도 못한 아르테미신전 같이 겉으로 들어난 것이 아니다, 그 따위 허접 공구리 덩어리 쳐다보고 요동치지 말아달라, 거기 댕기는 사람들이 말하는 성전과 바울이 말하는 성전은 다르니 요동치지 말라는 부탁내지는 권면의 편지,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가슴이 아린다.

어렵게 전도하여 가정교회로 모셔왔더니, 그 아름다운 아르테미신전을 못잊어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 할례받아야 진정한 기독교도라고 바지내리고 할례받으러고 설레발치고 다니는 넘들에 놀라 교회 발을 끊은 사람들,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막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기 죽지말라는(그러니까 권면했다) 성서기자의 간절함이 필자가 읽는 에베소서의 밑바닥 그림이다 (오해없으시길, 에베소서가 그런게 전부다라는 뜻은 아니다).

이건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갑자기 교회에 나타나지 않는 새신자들에 대해 여러분도 한번은 생각해보았을 만한 경험이다.

솔찍히 말해, 예수가 교회를 설립/창립했다는 기사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예수가 교회 안맹글었다.

예수믿으면 암이 없어지고, 직장에서 진급 팍팍되고, 장사 떼돈 벌고, 돈 떼먹은 사람 총알같이 빌려간 돈 가져오고,,, 이런 말은 없었지만, 한목사는 아주 격조있게시리 렉시오디비나, 무신무신 감성 이런 걸로 연결지어 설명함으로서, 결국은 기복신앙의 한 방편으로서의 렉시오디비나에 설교시간 40분 중 맨나중 10분을 할애한 후 오늘 설교를 마쳤다.

필자는, 한목사의 본한인교회가 과거 10여년간 벌였던 일련의 행위를 가능한 한 배제하고 오늘 설교에만 집중하려 애썼지만, 나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의 “사람”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성전은 겉으로 들어난 공구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라는 한목사의 말이다.

그러한 핵심으로 청중을 이끌어 들이기 위한 보조자료들을 준비함에 있어 한목사는 “대단히 소홀히 했다” 라는 필자의 생각이다.

사실 따지고보면 관사가 하나 나오냐 두개 나오냐 복수명사냐 단수명사냐 is 냐 are 냐 뭐 그걸 시시콜콜 따져가면서 읽냐, 전체 내용이 더 중요하고 그에 부합하면 되는 거지,,, 이러한 과도한 긍정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어느 면에서는 그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프로의 세계에서도 그렇게 대충 대충 읽어가는 것이 통할까 ? “성서학”, 성서를 연구하는 학문에 인생을 걸은 사람들이 쓴 책을 한목사가 인용한 것은 “시시콜콜 따져가면서” 읽을 이유가 있음을 강변하는 것 아니고 무엇인가.

“흠집내기”에 혈안이 된 필자의 모습이 읽으신 분에게 비쳐진다면, 그것은 게임의 법칙 – 공정(fair) – 이 아니다.

실제로 몸으로 일으키는 행위와 입으로 내뱉는 말이 다르면, 우리는 그를 향하여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기에는 부담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중인격자에게 내 속내를 들어내고는 싶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