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나누어 하기

헌금 나누어 하기

서언: 먼저 이 캠페인은 “헌금을 하지 말자” 가 아닙니다. “헌금을 우리동네 가난한 여러 교회에 분산시키자 – 헌금 나누어 하기” 이러한 취지임을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헌금을 할 수 있는 평신도라는 직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유의 권세입니다. 하라는 설교는 엉망으로 하면서 돈은 엄청 걷어다가 건물이나 짓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오늘도 교회사무실의 소파에 몸을 묻고 계신 목사님들아 교회를 움직이는 실 권세가 당신들에게 있지않음을 뼈가 저리도록 깨닫기를 바란다. 우리들이 갖다가 바친 헌금이 1200억짜리 2400억짜리 교회와 거대한 신문사라는 바벨탑으로 지금 우리 앞에 엄연히 서 있음을 유념하시면서 읽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헌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정의는 성경의 무수한 구절을 들이대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아무나 가는 그리하여 졸업장만 남발해대는 신학교 말고, 공부좀 한다는 애덜이 간다는 신학대학을 졸업한 목사라도 헌금은 이것이다 라고 명확하게 답을 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답을 내놓아 본다한들, 그것은 역설적으로 헌금이 어떻게 쓰여지는가를 보면 그 답 역시 공허한 메아리일 수 밖에는 없다.

적어도 작금의 한국인들이 드나드는 교회 안에서 만큼은. 여기서 구약의 역사가 어쩌고 모든것이 하나님 로 부터 왔으니 하나님께 돌아가야한다는 등등 고상한 말을 지껄이는 목사들, 미안하지만 그가 시무하는 교회의 예산/결산보고서를 앞에 놓고 그런 말 하기를 바란다. 아마 답이, 자신의 그러한 고상한 말이 개소리였음을 그 결산보고서는 간명하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헌금은 무엇인가? 답은 “돈”이다. 이 정의에 또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있나? 물론 화폐경제가 성립되기 전에는 양잡고 소잡고 비둘기 바치고(예수께서는 비둘기를 바쳐야 할 만큼 가난했다), 현물을 신전에 가지고 가서 바쳤다. 불과 50년전 까지만 해도 가난한 우리 아낙네들은 들에서 농사지은 것 거두어서 봄이면 밀바심하여 맥추감사절이라하여 밀농사지은 것을 갖다가 바쳤다. (여기서 한가지 한국교회의 희얀한 점은, 지금 밀농사는 거의 전멸했는데 아직도 맥추감사절이라하여 돈을 빨아내고 있는 한국교회의 참 해괴한 점이다. 한번 돈빠는 시스템 만들어 놓으면 도대체 뒤돌아 볼줄을 모르는 집단이다. (No refund system, period.)

지금, 그러한 농산물들은, 교회의 절기를 깨우는 – 그것도 돈을 빨아먹는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아주 고상한 데코레이션으로 전락한 – 그냥 소도구일 뿐이다. 모든 교인이 모조리 현물로 갖다 바치면 목사 머리 엄청 아플 것이다. 어차피 화폐 즉 돈의 시대에는 돈이 말을 한다. 그래서 곡식은 내가 시장에 내다 팔고, 교회에 가져가야 할 곡식을 돈으로 환산해서 목사가 편하게 계산 하라고 돈으로 그것도 봉투에 넣어서 목사 덜 쪽팔리라고 가져가는 것, 이 말에 그 어떤 보탤 말 있나?

헌금에 대한 예수의 정의는, 구약의 닭 몇마리 잡고 돼지 몇마리 잡는 그러한 한가한 헌금행위에 비한다면 너무도 가혹하다. 부자청년이 어떻게 하면 구원에 이르겠느냐 하는 질문에 예수께서는 단 한마디였다. 네 모든 것을 다 팔아서 헌금하여 그 헌금이 과부와 고아에 쓰여지도록 해라, 즉 전부 아니면 전무를, 이 보다 더 가혹한 헌금 강요행위가 또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목숨을 전인류가 마르고 닳도록 치루어야 할 헌금으로 바쳤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은 뒤통수 긁적이면서 돌아간 부자 청년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아시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을 수 밖에 없으셨다.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라고 대중가요 작사가 양인자는 조용필이 불러 불세출의 히트곡이 된 그녀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이미 밝혔다. 그렇게 외롭게 십자가에 매달려야만 했음으로. 따라서, 헌금은 이미 그가 다 해 버렸으므로 하나님을 향해야 하는 헌금은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여기서 필자의 이러한 생각을 깡그리 무시하는 목사들이 거의 전부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우리를 구원했다, 그렇다면, 왜 자꾸 날더러 회개하라고 통성기도로 갈구는가? 왜 자꾸 날더러 죄인이라고 세뇌하는가? 단한번에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를 죄로 부터 구원하셨다며?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며?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내가 잘못했다면 교도소에 가야하지 않겠는가? 여신도와 통정한, 그리하여 법정에서 사실관계가 이미 확정된 목사도 교도소를 안가는데 왜 자꾸 날더러 회개하라고 갈구느냐 이말이다. 교회돈을 등쳐먹어 그 사실이 낱낱이 밝혀져도, 그들은 절대 교도소 안간다.

참으로 안타까운 질문은, 예수께서 헌금하라고 어디에 그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가?

실제로 한국 교회는 그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돈 빨아다가 고작 하는 일이 건물관리 목사생활비 이것 빼고 뭐 있는가? 아하 그렇지 모기지 – 은행 대출금 상환 – 가 있군. 구제비 이런말 하시지 마시라. 교인들로 부터 빨아낸 전체 돈 중에서 오로지 3%가 구제비로 쓰이는데 “헌금이 모기지로 00퍼센트(두자리수임다 zero 퍼센트가 아니라요) 목사들 생활비 및 용돈 00% 건물관리비 00% 구제비로 3퍼센트…” 이런 식으로 쓰기에는 너무도 쩍팔린다. 필자는 이것이 틀리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 하신 적이 없는 헌금을 빨아 먹었으니까 어떻게 쓰던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않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목사님덜, 답이 있으십니까? 답이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으십시요. 교인들에게 허구헌날 다 내려 놓으라고 말은 허벌나게 하지만, 그러는 당신은?

선교도한다,,, 선교비라는 항목을 들이대서 장난치지마라. 누가 선교간다고 하면 교회에서 돈 다 내주나?? 본인부담이 상당히 될걸. 박머시기 목사 똥물교회에서 아프간 간다고 했을 때, 교인들이 내서 갔다고 했다. 분당의 부자들이 모여 드는 교회에서도 교회가 전부 안주는데,,, 예수께서는 선교갈 때 빈 주머니만 가지고 가라고 했지 않았는가?

헌금을 왜 하는가?

이에 대한 이유는, 굳이 성경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답은 여러분이 매주 교회 가셔서 설교를 가장한 개구라 썰 30분 듣고 잠자리채 돌리면 체면상 집어 넣은 돈 몇푼에 대한 먹사의 봉헌기도와 연말 결산서를 비교해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그것 말고 또 다른 정의가 필요할까? 물론 이중에는 자신의 어려움보다 남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한 긍휼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뼈빠지게 벌어 고이 간직했던 예수의 마음으로 던져진 “두 렙돈”이 있음을 필자가 마구 도매금으로 넘겨버리고 있음을 용서하시라.

아마 봉헌기도에는 이 말이 거의 빠지지 않을 것이다. “주의 일을 위해” “먼저 주의 의를 구하라” “바친 손 길에 축복하라 – (안바치면 축복 안하냐 이 얼빠진 먹사야)” 3%도 이웃을 향해 쓰지 않았는데 주의 의를 먼저 구한것이냐, 3%도 안 쓰는데 주의 일을 위한 것이냐 입은 째져 있으나 마땅히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좋다, 까짓것 안믿는 사람들 뭐하러 돈주냐, 그렇다면 한달 생활비도 안걷히는 시골교회에서 고생하는 너희들 동료 목사들에게라도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몇 퍼센트인데……

어느 교회의 여자 전도사가 있었다. 그녀는 직장암으로 고생하다 결국 세상을 일찍 떠났다. 나이 40대중반이었다. 그녀가 설교하던 교회는 젖먹이 아이까지 스무명도 아니되었다. 그녀가 죽기 몇달전에 생활비가 없어서, 남편과 어린 딸이 거의 굶다시피했다. 그때, 어떤 시골 목사께서 일부러 찾아와 대신 말씀 전하고 그녀를 위해 너무도 간절히 기도했다. 주위에는 떵떵거리는 교회들이 부지기수였건만, 그넘덜은 같은 동료사역자가 죽어감에도 코빼기도 안 내밀었다. 일반 사회에서도 서너명이 모이면 상조회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 어려울 때 서로 품앗이 하는데, 이 셰이덜은 배때기가 터져 나가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면 버렸지 이웃집 목사는 굶던 말던 완전히 딴나라 사람이다. 그 정도로 골이 빈 잉간들의 집단이다.

입만 열면 형제, 주 안에서,,, 온갖 개소리는 교인들 앞에서 지껄이지만, 자신의 영역을 범접하는 사람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그들이다. 이 구역은 내구역이었어, 씰데 없이 어슬렁거리면서 내 돈 빨지말라는 가슴에 칼을 품은 자들의 당연한 처사이다.

답은 자명하다, 평신도인 우리가 직접 주의 의를 먼저 구하면 된다. 왜 먹사의 똥묻은 손을 거쳐야하지?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자, 여러분이 어떤 물건을 만들어 파는 회사를 운영한다면, 만든 물건값보다 운송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운송회사를 하나 차리고 사장님에서 회장님이 되실것이다. 물건 만드는 회사에서는 운송비를 많이 지불하더라도 회장님은 이쪽 주머니에서 저쪽 주머니로 돈을 옯긴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헌금은 감리교회에서 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잘못될 것이 하나도 없다.

탄생 배경의 마지막에서 잠깐 언급했던 것을 이제사 비로소 실행에 옮깁니다. 여러분, 헌금을 화-악 줄이십시요. 여러분이 헌금 안해서 교회가 무너진다 망한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걱정하실 일입니다. 정 안되면 목사 똘마니들인 바보장로들이 집을 팔아서라도 해결할 겁니다. 가난뱅이 장로들을 본 적 있으십니까? 있더라도, 그 장로는 말빨이 없어요. 당간부회의에서요.

이제 화-악 줄이신 헌금으로, 가난한 이웃 교회를 찾아 가십시요. 우리 동네 작은 교회 목사가 이뻐서가 아니라, 적어도 밥은 멕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안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도 우리처럼 아이들이 있고 배우자가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좋은 옷 입고, 극장 가고, 여행가고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가 하나님 일 하는데 왜 아이들이 그 피해(?)를 입어야 하나요? 애들 등록금 걱정, 사모님 걱정때문에 제대로 설교 준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설교가 안되면 있던 사람들도 뒤도 안 돌아보고 다 떠납니다.

저는 여러분께 사회의 그늘진 곳은 말도 꺼내지 않겠습니다. 점심이 없어 못먹는 근처의 애들 놔두고 돈들고 총탄이 쏟아지는 그 먼 곳으로 봉사(?)하러 왜 가는지 이해가 아니됩니다.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우리 평신도들에게 주신 고유한 권세, 이제 우리가 뽑아 들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헌금 나누어 하기 캠페인
2011년 목련 꽃 흐드러진 어느 봄날.
바보스쿨 닷컴 – www.babosch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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