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배

2012년 새해 들어서 처음 갖는 바보스쿨 구역예배, 오늘은 예수를 만나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서 제자가 되는 과정에 관한 에피소드를 함께 묵상,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으로 정한 누가복음 5장 – 이제는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 에 기록된 누가의 진술을 통해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예수의 참뜻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누가복음 5장1절-11절

1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1One day as Jesus was standing by the Lake of Gennesaret, with the people crowding around him and listening to the word of God, 2he saw at the water’s edge two boats, left there by the fishermen, who were washing their nets. 3He got into one of the boats, the one belonging to Simon, and asked him to put out a little from shore. Then he sat down and taught the people from the boat. 4When he had finished speaking, he said to Simon, “Put out into deep water, and let down the nets for a catch.” 5Simon answered, “Master, we’ve worked hard all night and haven’t caught anything. But because you say so, I will let down the nets.” 6When they had done so, they caught such a large number of fish that their nets began to break. 7So they signaled their partners in the other boat to come and help them, and they came and filled both boats so full that they began to sink. 8When Simon Peter saw this, he fell at Jesus’ knees and said, “Go away from me, Lord; I am a sinful man!” 9For he and all his companions were astonished at the catch of fish they had taken,10and so were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Simon’s partners. Then Jesus said to Simon, “Don’t be afraid; from now on you will catch men.” 11So they pulled their boats up on shore,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

누가의 진술에 의하면 오늘 말씀의 예수는 게네사렛이라는 갈릴리 호숫가 어느 조그마한 마을의 물가 모래 밭에 서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마을의 많은 주민들은 주로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 즉 어부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곳 게시판 어디엔가 사진과 함께 포스팅 되어있는 이름이 “베드로 고기”인 물고기를 잡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물고기를 여름에도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상태로 가공해서 즉 갈릴리 호수 쪽으로 불어가는 바람에 말린 후 훈제하여 내다 팔았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케 하는 시설들이 갈릴리 호숫가 어촌 마을에서 출토된 고고학 자료들이 증언합니다.

1절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중심으로 둘러 서 있었고 예수 역시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청중들은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켠에는 몇척의 배가 물가에 있던 아름다운 수채화 그림 한편이 머리속에 확 들어 옵니다. 그냥 물가에 대 놓은 채 그대로인 정말 한가로운 장면이지요. 몇 척의 배 근처에서는 예수를 중심으로 서서 연설을 듣던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도 없었던 듯이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물을 정리하던 어부들이라고 누가는 진술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중에 그 중 한 배에 승선합니다. 자신이 설파하던 말씀과 배에 올라서 하고자 했던 자신의 어떤 행동이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불행하게도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는, 예수께서 전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어쨋든 그 배의 주인이 바로 시몬(Simon) 베드로입니다.

아무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그냥” 아무 배나 올라 탔는데 그 배 주인이 베드로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만나실 때도, 그냥 “아브람”이었읍니다. 아브람이 특별히 어디가 잘나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어서 종교개업에 특출난 스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한 명 선택했더니 그게 바로 아브람이었을 뿐입니다.

저는 “그냥” 이라고 표현했지만, 신학자들과 목사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시다 라고 사족을 달더군요. 배에 오른 예수는 다짜고짜 배를 호수쪽으로 조금 옮기라고 베드로에게 요청합니다. 3절 말씀에 보면 땅에서 조금 떨어진 배위에서 땅위의 청중을 향해 가르쳤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추측컨대 아무리 멀어 봤자 목소리가 안들릴 정도의 먼 거리는 아닐 것입니다. 당시에 확성기가 있었겠습니까 고성능 앰프가 있었겠습니까 아이폰이 있어 실시간 생중계를 했겠습니까,,,,,,

어쨋든 예수께서 청중을 향한 연설을 끝내신 후에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한번 잡아 봐라 – for a catch – 두번도 아닙니다. 한번 해 봐라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말하기를,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다”

“Master, we’ve worked hard all night and haven’t caught anything. But because you say so, I will let down the nets.”

라고 답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여”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뭔가 일이 잘 안풀리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의 고명하신 목사들은 “말씀에 의지하여” 라는 구절을 수도 없이 되네이며 “지금까지 우리는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 온것이 아닌가 하면서 곰곰히 뒤돌아 보기 보다는 울고 불고 회개기도 엄청했던 것이 거의 습관처럼 되어있던 것은 아니던가요. 저는 그것이 나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어떤 구절로 인해 나의 삶이 예수가 갔던 그길로 가게끔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수의 명령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그러나,

“성도님들, 여러분의 생각대로 여러분의 의지대로 세상에서 장사를, 공부를, 회사일을 했는데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장사는 시원치 않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공부는 엉망이어 성적은 안나오고, 회사원들은 진급은 커녕 짤리기 직전이고… 그러니 여러분도 베드로 처럼 말씀에 의지해서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어 만사형통하시게 됩니다” 와 같거나 비슷한 설교를 수도 없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자 ~ 5절을 영문으로 보면, 베드로는 배 대놓고 그물 닦느라고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쪽에서 사람들 잔뜩 모아 놓고 떠들던 예수라는 사나이는 생전 아직 한번도 본일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열심히 그물 손질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베드로 입장에서 보면 예수가 느닷없이 배에 올라와 일장 연설하더니 배를 깊은 곳으로 띄워라 그리고 그물을 쳐라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사나이가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말씀에 의지해서” 라는 말은 21세기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는 “말씀”이라는 의미와 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말씀”, 이거 일단 성경말씀은 당연합니다. 성경말씀이라함은 지금이니까 신구약 66권이지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신약성경에 인쇄된 단어 “말씀”이라면 당시로 보면 구약일 텐데 누가의 진술로는 적어도 신구약 말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by the Words of God – 즉 말씀에 의해서 이것이 아니라 because he said so – 즉 입으로 “배를 옮겨라” 라고 예수가 말을 했기 때문에 배를 옮겼기 때문이지요.

“아 ! 하나님이신 예수가 하신 말이니까 그것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려야겠다” – 이런 뜻으로 느껴지시나요 ? 아직 베드로는 예수를 모르던 때였지 않습니까 ? 그러니까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누군가 말을 하니까 그대로 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말씀”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적어도 베드로가 생각하는 “말씀”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단어 “말씀”은 이미 신약 성경이라는 경전이라는 물감으로 채색된 의미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예수로 부터 그물을 쳐보라는 말을 베드로가 들었을 때, (베드로의 생각에) 이 말은 경전에 기록된 말이니까 즉 “말씀” 이니까 경전을 따라야지,, 이렇게 생각했겠느냐 입니다. 베드로 시절에는 신약성경이 없었는데요……

“그가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에” 라는 자고로 단순한 사건을 “말씀에 의지해서” 라고 번역을 해 놓으니 느닷없이 “거룩덩어리”가 되어 버렸고 “말씀에 의지해서” 라는 표현이 누가복음 5장 서반의 이 에피소드의 참뜻을 덮어 버립니다. 우리의 눈이 멀게되었다 이 뜻입니다. 왜그런가요 ? 누가 복음 5장 서반의 이야기는 “말씀에 의지해서” 가 주제어가 아니라 바로 11절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나뭇잎을 보고 숲을 못보게 만든 편견이 우리를 절대근시안으로 만들어 버렸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목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밝히 깨닫게 하지 않은 목사들만, 우리는 거의 평생 만났을 뿐이기 때문이지요. 만일 예수가 호숫가에서 사람들 모아놓고 전하고 있던 말씀이 키워드이었다면 누가는 그 내용에 무게감을 두어 기록했으련만 내용은 단 한마디도 없어요. 오늘 이 에피소드의 주제는 번역조차도 적절치 않은 “말씀에 의지해서” 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 누가의 진술을 따라 가 보십시다. 6절에 예수가 말한 대로했더니 고기가 많이 잡혔고 너무 많은 나머지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했다라고 합니다. 많아 봐야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지금의 1만톤급 남태평양 원양어선의 그물질 한번이면 그들의 십년세월 그물질로도 감당이 아니되겠지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기적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기적을 보여 주십시요 라고 말하면(기도하면) 그때마다 기적을 짜-잔!! 보여주는 마술사 혹은 서커스단원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그럼에도 우리들은 제발 이번 한번만 보여 주면 어찌어찌 하겠다고 얼마나 많이 칭얼대었던가요 ? 11절 말씀에 예수는 베드로의 행동을 통해 예수가 가는 길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7절에 고기를 너무 많이 잡은 베드로는 와서 도와 달라고 다른 배에 있던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제 배가 두 척이 되었군요. 두척을 다 채웠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은 아실거예요. 어느날 갑자기 평소보다 열배의 수입이 들어 오는날은 몸은 지쳐도 얼마나 통쾌하고 가슴이 뻐근하시겠습니까,, 다 아시지요 ? 생각치도 않은 보너스가 나온다,, 얼마나 뿌듯해던가요,, 시험 준비는 안되었는데 지난번 성적으로 대체하겠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얼마나 큰 한숨을 토해냈던가요,,,,

아뿔싸 !! 그런데 두척의 배에 잡은 고기를 다 채우니 이제 배가 가라 앉기 시작합니다. 7절의 “잠기게 되었더라” – 이표현은 영어로 보면 sink – 즉 가라 앉다 침몰하다 라는 뜻인데 “잠기게 되었더라” 라고 하니까 아~ 배가 무거우니까 몰좀 차들어 오나 보다 라고 소홀히 여겨버리는 습성에 젖은 우리들은 이 말의 참 의미가 피부로 느낄 만큼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게 해주신 예수께서, 만선의 콧노래가 가득한 배를 야속하게도 이제 침몰시키시기로 작정하신 모양입니다. 원래가 급하기도 한 베드로가 다급해서 예수께 무릎아래 엎드려 “나에게서 떠나시라, 나는 죄인이다 – Go away from me, Lord” 라는 (매우 황당하게 보이기도 하고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때까지 예수의 연설을 들은 것은, 배에서 육지사람들을 향해서 설파한 예수의 연설이 베드로에게는 전부입니다. 불행하게도 그 연설내용을 누가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이 누가에게는 주 관심사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베드로의 일성이 Master(선생이시여)에서 Lord(주님)으로 바뀌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아니됩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연설과 고기를 많이 잡게도 하시고, 또 그것으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탄 배를 침몰시키기도 하시는 예수를 베드로가 드디어 “알아 봤다” 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로 픽업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베드로를 진정시키신 후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교지를 내리십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배를 육지에 대고 잡은 고기 잘 챙겨 수협공판장에 가서 경매로 좋은 값에 팔아 현찰을 챙긴 후에 예수를 따라 간 것이 아니고, 배를 대고 모든 것을 다 그대로 놓고 예수를 따라 갔다고 누가는 대단히 아쉽게 이 사건을 종결지어 버렸습니다. 한 밑천 확실히 잡았는데 그것을 만져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놔두고 예수를 따라 떠나 갔다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여러분의 목사가 목사 안수 받을 때 가지고 있던 모든 동산/부동산을 그대로 놔두고 예수를 따라간다고 안수 받았음을 짐작 혹은 목격하셨지요. 소유권은 절대 변동없이 그대로 놔두고 말입니다.

예수를 몰랐을 때 가지고 있었던 모든 소유물, 예수의 은혜를 통해 받았다고 생각했던 경제적 수혜물,,,, 뭐좀 짚히시는 게 없으신가요 여러분, 여러분이 출석하시는 교회의 모든 교우들의 재산 상태와 한달 수입을 많고 적음의 순서로 일렬로 늘어 놓은 후, 목사의 한달 수입과 재산 가치를 그 순서에 맟춰 끼워 놓어 보십시요. 순서로 보아 하위 5퍼센트에 드는 가난뱅이 교우들이, 시빌쪼를 선두로 온갖 명목의 헌금형태로 바친 돈이 사례비, 주택비, 도서비 등등 셀 수도 없을 만큼의 해괴한 명목으로 목사에게 꼬박꼬박 지급되어, 상위 95퍼센트 안에 들어가는 목사의 생활비와 재산 증식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오늘 누가복음 5장 말씀은 뒷통수를 때리는 누가의 헛소리(?)인가요. 한 수 더뜰까요, 한달 총 수입을 한달 총 노동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시간당 수입이 계산되겠지요,, 시장에서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삭풍의 눈발에 비바람에 좌판 벌려 어렵게 돈을 버는 교우들과, 냉난방 확실하게 되는 사무실에서 소파에 몸을 묻고 사시면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맘대로 “주의 일” 핑계 대고 가고, 수만원짜리 점심상을 마주 놓고 “주의 일”을 하시고, 책은 사시기는 하는데 도통 읽으시지는 아니하고,,,,,, 이 양반들과 비교,, 글쎄요…

여러분 이 이야기는 말씀에 의지해서 뭔가를 했더니 호박이 덩굴 채 들어 오더라, 혹은 주의 일 하려느냐 그러면 이제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는 뜻이구나 하는 정도의 가벼운 성경인용의 대상이 되는 말씀으로만 우리가 이해한다면, 그것은 예수를 어떤 서커스단원 내지는 신학대학교 강사정도로 격하시키는 일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11절에서, 누가는 그들이 밤새워 일했음에도 아무것도 잡지 못했을 때 예수의 말한마디에 엄청난 실물을 수확했지만 그들이 그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은 고작 사람의 손짓이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배를 대는 그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 모든 것을 버려 놓았다, 그리고 예수를 따라갔다고 누가는 진술합니다. 더우기 사람들이 “대박났다!!”고 환호를 지르던 그 시각에 예수는 배를 침몰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하시는 사업이 잘 않될 때 – 아~ 말씀에 의지해서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의 길을 가면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길로 곧장 실행에 옮기면, 채권단에서 가만 놔두겠습니까 ? 재정보증을 선 가까운 친척들과 지인들의 부동산이 은행에 넘어가도 그런 말씀 하시겠씁니까 ? 여러분께서 신용 불량자가 되어도 “말씀에 의지해서” “가족들이야 친척들이야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던 말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버려두고” 주의 길을 가련다 하고 가시겠습니까 ? 이런 행동을 하면 세상의 누구도 예외없이 정신병자 혹은 인격파탄자 취급하겠지요.

오늘 배에 있던 사람들은, 같이 있던 일반 어부들과,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두사람은 세배대의 아들이다) 세명을 실명을 들어 누가는 언급했고 이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 후에 이름하여 사도계급장 소지자들이 아닙니까 ? 결국 이 이야기는 사도들에게 무게를 더 두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이 사도가 되기 전에 그전에 이미 취했거나 예수를 만난 후 취했거나 모든 것을 다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 나선 사람들이라는 누가의 진술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의지하여” 에서의 “말씀”을 백번 양보하여 신구약성경말씀의 “말씀”에 적용한다 하더라도 예수가 그물을 내리는 당사자인 나 시몬에게 말했기 때문에 나 시몬이 그물을 내리겠다 – Because you say so (to us) – 에서의 예수가 말하고 자 했던 대상은 바로 사도의 예비후보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평신도인 우리는 이 에피소드에서 자유로운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배에는 베드로 말고 또 한명이상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하여 동무들을 불러 도움을 청할 때, 영어 성경은 7절에서 sinaled their partners 라고 복수(their)로 하는 것을 보아 베드로의 배에는 적어도 두명(예수를 빼고), 베드로와 다른 선원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도와주러 온 다른배에 탄 사람들도 적어도 두명이상(partners)입니다. 그러니까 총 네명이상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 이 세명만의 실명만을 밝혔습니다. 그 세명은 사도가 되었고 그러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한명이 이상의 사람(들)은 ? 그(들)는 우리와 같은 “업자”들일 뿐이었지요. 그럼에도 그 “업자(들)” 역시 다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고 누가는 기록했습니다.

평신도인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예수를 안다는 죄(?)에서 면피가 안된다는 누가의 준엄함입니다.

기도 :

우리의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여, 오늘 함께 묵상한 당신의 제자 삼으심 과정에서 또 다시 무기력한 우리 자신이 벌겋게 드러나니 부끄럽습니다. 이 땅에서 “좋은 것들” “좋게 보이는 것들”을 당신이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 순간에 이미 당신은 그것을 호수 깊은 물에 침몰시키시기도 하심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당신의 말씀과 사역을 직접 보고 따라간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다 내려놓아야 하지만,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당신께서도 아시오니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다만 그럼에도, 우리의 공로를 여쭙지 않을 수 없음니다. 우리는 비록 생색내기에도 부족한 것을 매주 당신의 전에서 바칩니다. 또한 국가의 조세제도라는 시스템을 통해 당신의 뜻을 구현하겠다고 생색내기에조차도 부족한 것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행함에 있어서 당신의 십자가 피값 주고 사신 교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전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작금의 맘몬주의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우리는 원치 않습니다. “그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하면 우리는 따돌림을 당하고 비방만 일삼는 문제아로 취급되어 거룩하고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어야 할 교회에서 쫒겨 나는 신세가 되었나이다. 항상 낮은 곳, 압제당하는 자들 편이셨던 예수여, 이곳에 오셔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사, 오늘 우리가 나눈 이 말씀을 저들이 듣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일에 더욱 더 매진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당신을 더 밝히 알 수있게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헌금 : 병원 고아원 의학연구소 등 사람 살리는 기관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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