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연합교회-정성민목사-설교비평-기쁨-기가 뿜어 나오는 삶

2013년 첫번째 바보스쿨 설교 비평은 캐나다의 대표 도시인 토론토의 시내 한 복판 아주 작은(?) 교회 – 임마누엘 토론토 한인연합교회의 정성민 목사(이하 정목사)의 성탄절 전 주일에 설파된 설교를 그 대상으로 한다.

성장주의, 건물주의 그리고 기복신앙이 전부라고해도 별로 할말이 없는 작금의 시궁창 캐나다 토론토의 대형한인교회들,,, 아니지 대형한인마트들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지, 그 대형한인마트들에게 교인들 다 뺏기고 허겁지겁 그들을 쫓아기기에 그들이 하는 짓꺼리를 따라 하느라 모든 것을 다 걸어버리는 듯한 군소 꼬마교회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비록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집단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마저 작지 않음을 오늘 정목사 설교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한다.

크고 넓고 삐까뻔쩍한 대형교회가 교인들 하나 둘씩 다 빨아 갔다하여 대형교회가 추구하는 세상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성전짓기”, “하나님 빚쟁이 만들기”에 동참하는 어리석음을, 스스로 작다 여기는 교회의 성도님들과 목사들은 범치 않기를 소망한다.

여기 바보스쿨 홈페이지에 걸려있는 개판설교=교회죽이기 등식을 유념하시기를.

오늘 이 비평문을 쓰면서, 필자는 정목사의 설교를 몇편 더 들었다. 필자는 놀랐다. 그의 설교에는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온갖 허점 투성이와 구린 곳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 즉 영웅, 록펠러처럼 성공한 비즈니스맨, 별을 단 장군 혹은 내세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데 무신 굉장한 것처럼 떠벌이는 자기자신의 목회이야기 등등이 정목사가 설파하는 설교에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죽자고 성경만을 강독 내지는 강해하여, 그리하여 너무 딱딱하다거나 요절말씀만 줄창 끌어 대는 미시사가 s장로교회 p목사와는 확연히 다름을 필자는 알아차렸다.

물론, 부임해 온 지 아직 반년밖에 안되었으므로 좀 더 두고 봐야하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것이다.

정목사는, 하늘의 별 이야기를 말 꼬투리 삼아 그의 설교세계에 청중을 끌고 들어간다. 과거 2000년전 예수가 태어 나던 그 날밤 그 밤하늘로 청중을 끌고 들어간다. 그 별을 기다리는 너와 나, 인류에게 임재하고 결국 새날이 밝아 왔다, 그러니 기쁘지 아니한가, 라고 정목사는 말한다.

필자는 정목사의 동영상 설교를 듣는 중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크리스마스를 인정하고야 말아버렸음을 고백해야만 한다. 12월 25일은 동짓날 그 무렵, 일년 중 해가 막 커지기 시작하던 그 무렵, 고대 미트라/아이시스 태양신의 생일이다.

콘스탄틴황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모든 종교를 한 곳에 쓸어 모으고 기독교를 대표 종교로 키워 준 사건이 있었지요. 그런 와중에 태어난 기형의 크리스마스, 예수의 호적생년월일 기재사항 변경, 이것이 오늘날 거개의 기독교도들의 눈에 거꾸로 걸린 크리스마스 이미지이기에 12월 25일 성탄절을, 수년전에 필자는 이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목사의 설교는 이러한 문자주의라면 또 다른 문자주의에 빠져 있던 필자의 타성을 wake-up한다. 필자는 이것이 목회자의 해석능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바보스쿨의 건학 이념이되는 느헤미야서 8:8에 기록된 바,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깨달아 알게하는 능력.

토론토 한 복판에서 이런 설교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기이하기만하다. 바보스쿨에서 악악대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차리시고 정목사를 토론토 연합교회로 트레이드하셨는지 모를 일이지만. 물론 정목사가 부임한지 1년도 안되는 시점이기에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지만, 암튼 기이할 뿐이다.

오늘, 기쁨 – 기가 뿜어져 나오는 삶이라는 제목의 정목사 설교는 신앙지도라는 요소까지 절묘하게 버무려 냄으로, “평신도를 훈계의 대상으로 밖에는 보지 못하는 타성”에 젖은 대형교회 목사들과 절묘하게 차이를 들어낸다.

또한 설교 중에 찬송가는 비록 부르지 않았지만, CD를 누가 틀어 놓은 것도 아닌데도 설교의 배경에 한편의 찬송가 은은하게 흐르고 있음을 알아차림은 필자만 그런가?

직접 들어 보심이 ……

 

“임마누엘연합교회-정성민목사-설교비평-기쁨-기가 뿜어 나오는 삶”에 대한 5개의 댓글

  1. 다음은 임마누엘 토론토한인 연합교회 웹사이트의 목회자 소개에서 퍼온 글입니다. 그가 약속했다는 징표로 여기에 옮겨놓읍니다.

    제 2의 종교개혁을 위해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걸어 가고자 한다. – 아랫글 맨 마지막

    나는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 보수적인 목사의 가정에서 4형제중 둘째로 태어났다. 성민(聖民)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의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신께서 미리 점지해 주신건지, 국민학교 1학년 마지막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급우들 앞에서 나는 “내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따라 목사가 될 것이다”라고 선포했다. 그 때 이래로 한번도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없이 한 길을 달려왔고 지금도 그 길을 ‘무소의 뿔처럼’ 홀로 묵묵히 걷고 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신학의 기초를 쌓았고 또 그 옆동네에 계셨던 김흥호 (이화여대 교목) 목사님으로부터 신앙의 지평을 넓혔다 (기독교 뿐아니라 유교 그리고 불교 경전을 공부할 기회를3년간 얻었다). 군 생활 3년후에 경동교회에서 당대 최고의 설교가인 김호식 목사님으로부터 설교의 본질을 맛 보았다. 그곳에서 대학부 간사를 했고, 김호식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시무하신 예닮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초등학교, 중 고등부, 그리고 대학부 지도를2년여 동안 담당하고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다.

    1994년 3월에 유학을 와서 그해9월부터 노바스코샤주도인 할리팩스에 위치한 연합교회 소속인 Atlantic School of Theology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로마 카톨릭, 캐나다 성공회 그리고 연합교회가 공동으로 설립한 학교이기에 그 안에서 새로운 교회연합 운동과 다른 교파의 사람들과도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형제 자매임을 경험했다.

    1995년에 Fort Massey United Church, Halifax로 한국의 예닮교회에서 교적을 옮기고 그 교회를 통해서 연합교회에서 요구하는 목사가 되기 위한 모든 과정을 마쳤다. 1998년 1월부터B.C. 주에 있는 Chilliwack에 있는Chilliwack United Church에서 Bob Wallace 목사님의 지도하에 인턴쉽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99년 4월에 AST에서 Master of Divinity를 받았고 같은 해 5월에 Maritime Conference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첫 부임지로 Wesleyville, Newfoundland에서 4개의 교회를 맡아 약800여명의 교인들과 더불어 3년간 목회를 했으며2002년 이른 봄에 하트랜드-잭슨빌 연합교회(Hartland-Jacksonville Pastoral Charge)로부터 청빙을 받아 Woodstock, New Brunswick 으로 옮겨와 10년을 보냈다. 나는 지난 14년 목회를 하면서 20분 설교를 위해 매주 20시간을 투자했다. 이 과정속에서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13장 11절의 신앙고백이 나의 신앙 고백이 되었다. “When I was a child, I spoke like a child, I thoughtlike a child, I reasoned like a child; when I became an adult, I put an end to childish ways.” 20여년의 신앙의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나는 진리를 맛 보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경험했고 그 경험을 내 목회에 적용하며 살았다.

    John 8:31-32 31 Then Jesus said to the Jews who had believed in him, “If you continue in my word, you are truly my disciples; 32 and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make you free.”, 위 요한복음의 기록처럼 예수의 말씀을 탐독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고, 그 과정속에서 진리를 깨달았고 그리고 진리가 나를 자유케 만들었다. 이 자유함이 나로하여금 2012년 임마누엘 한인연합교회의 청빙에 순응하게 만들었으며 20여년의 비한인사회의 생활을 청산하고 제 2의 종교개혁을 위해 나의 십자가를 지고 임마누엘 공동체와 함께 예수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걸어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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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정목사 목회비젼 : 역시 임마누엘 토론토한인연합교회 웹사이트에서, 그가 우리에게 약속했다는 징표의 글.


    1) 캐나다 유학과 연합교회 선택_

    일찍이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으로써 궁금한 것들이 있었다. 사랑을 강조하는 기독교인들이 왜 서로 싸우고 교회가 분열하고, 세상은 더욱 악해지고 있는가? 서양종교인 기독교, 서양기독인들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3세기 로마제국의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예수의 기독교, 3세기 이전의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궁금증과 한국에서 영어를 master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냐는 판단이 나로 하여금 유학의 길을 선택하게 했다.

    나는 연합교회를 사랑한다. 만인 평등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자세와 열린마음이 좋다. 사회 정의와 약자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제도적 도전 그리고 그 열매가 자랑스럽다. 그래서 연합교회를 선택했다. 허나, 지금은 연합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염려가 앞선다. 왜 이렇게 멋있는 연합교회가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가? 연합교회뿐 아니라 과연 서양의 교회에 미래가 있는 것인가? 그 원인 무엇인지 묻고 답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구도자의 자세를 21세기 시대적 사명으로 여기고 목회를 하고 있다.

    2) 나의 목회 철학_

    제 39차 연합교회 총회에서 “Emerging Spirit”이라는 깃발아래 10.5 million 투자해서 캐나다 연합교회의 잃어버린 세대 (the Lost Generation)와의 재 결합을 시도했다. Workshop도 하고 Wonder Café Website도 만들고, 잡지와 신문에 연합교회를 알리는 광고도 대대적으로 했다. 제 40차 총회(Kelowna, B.C. 2009년)의 총대로 참석한 사람으로서 “Emerging Spirit Report”에 대한 나의 견해는 상당히 냉소적이다. 돈 낭비, 시간 낭비다.

    나의 영적 여정을 기초로 해서 살펴보면,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서 그리고 그 말씀속에 숨겨진 진리를 찾는 과정속에서 생성되고 자라난다는 것이다. 나는 20여년동안 말씀을 들으며 살았고, 또 다른 20여년동안 말씀을 탐독하고 살았고, 지난 2007년 깨달음이래로 말씀을 선포하고 살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나는 나의 생의 처음 20년 동안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믿었고, 또 다른 20년을 역사적 예수와 씨름하면서 진리를 추구했으며 지금은 내 안에 내재한 신성인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신앙은 이와같이 신화화, 비신화화, 그리고 재신화화작업의 과정이라고 본다.

    나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깨달음, Awakening, Enlightenment에 있다고 본다. 기독교적인 표현을 빌리면 거듭남 (born from above)이다. 즉,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신성, 예수 그리스도를 깨워 탐진치인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나도 신의 아들/딸로 이 세상에서 신의 뜻을 받들어 복음서의 예수처럼 당당하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다가는 것이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과 하나가 되는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신이 되어야 한다. 종교는 성화를 돕는 과정의 동반자와 같은 것이라 본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지금도 신실한 기독인들이 주일 아침에 교회당을 찾는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함이리라. 그러하기에 목사는 무엇보다도 설교가로서 문자화 되어있는 말씀을 숨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화시키고 오늘의 현장에 맞게 재 해석하는 작업에 최선을 다 해야한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이 물질이 부족한 것도 아니요, 정보가 부족한 것도 아니요, 기술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도, 삶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 심령을 신의 말씀으로 양육하는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나의 근본적인 인간 이해는 “우리 인간은 몸뚱아리 이상이다”라는데서 출발한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을 때 돌이 떡이 되게하라는 사탄의 도전에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즉, 사람의 가치는 경제적 풍요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의미다. 신적인 영과 동물적인 육체의 결합체가 인간이기에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물질적인 것과 더불어 영적인 것을 갈망하고 있다고 믿는다. 연합교회 목사는 말씀, 성례, 심방과 돌봄 (Word, Sacraments, Pastoral Care)을 감당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고 분명히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가 말씀에 영감을 받고 감화 감동되지 않고서 어떻게 교인들의 영감을 깨울 수 있겠는가? 나는 이를 위해 매 주 나의 시간의 절반을 투자해 오고 있다. 주일날 교회 오는 것이 즐겁고 말씀으로 감동을 받고, 그래서 기쁨으로 세상을 살면서 악을 선으로 이겨내는 삶, 이를 위해 교회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나는 무당이 작두타는 심정으로 주일날 교인들 앞에 선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다. 다시 말하면, 관계의 종교다. 십자가는 두개의 선, 수직선과 수평선이 만나야 만 가능하다. 우리 연합교회는 1925년 교회 설립 이래로 수평선을 늘리는 작업을 하는데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본다. “Draw the circle wide.” 즉, 기독교라는 울타리를 넓히는 작업을 잘 해왔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많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연합교회라는 넓은 수영장에서 같이 즐기고 있다. 그러나 수직적인 관계, 하나님과의 내면적인 관계를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는 데는 소홀하지 않았나 지적하고 싶다. 수영장의 물에서는 우리가 같이 놀 수는 있어도 그 수영장 물을 마실 수는 없다. 생수는 반드시 깊고 높은 산 속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만 그 맛이 있듯이 . . .

    나는 연합교회의 많은 미팅과 집회에 참여해 왔다. 다 좋다. 한가지 아쉬움은 내 영을 감동시키는 내면의 깊은 생수를 아직 맛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젊은이들이 연합교회를 외면하는 이유중 하나이지 않을까!

    십자가 상징에서 얻은 지혜중 하나는 두 선의 균형감이다. 연합교회의 수평적 감각은 현대 교회사에서 가히 최고를 달리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신과의 수직적 연결을 심화시키는데 교회로서 결핍이 있다. “어떻게 하면 하늘 하나님께 이를 수 있을까?” 내가 깨달은 지혜는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 속 깊고 은밀한 곳에서 속삭이는 신을 찾고 그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경험한 나의 하나님을 매주 성도들 앞에서 고백한다. 그래서 나의 설교는 나의 신앙고백이요 나의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3) 나의 목회 비젼_

    앞에서 잠깐 언급했 듯이, 나는 아주 보수적인 가정에서 신앙 생활을 했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고, 문자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요, 천국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믿어왔다.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역사적 예수를 탐구해 왔다. 2007년 겨울 이 역사적 예수를 극복했다. 애벌레에서 오랜 고치 단계를 건너 자유를 만끽하는 나비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1-32)

    나비의 세계는 자유함의 세계, 걸림이 없는 세계다. 소경이었던 나의 눈이 밝아져서 내가 보고, 내가 말하고 실천하는 세계다. 남들이 나를 보고 이단이라고 정죄해도 나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질 않는다. “내가 아버지 안에 그리고 아버지가 내안에 계시기에 . . .” 그러나 세상 권력은 그 예수를 죽이려고 했고 지금도 그렇다. 한가지 고마운 사실은 교회 권력이 진리의 사자들을 화형시키고 단두대로 보냈던 그런 힘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서양에서는 . . .그래서 나는 매주 가감없이 내가 깨달은 진리를 선포한다. 심지어는 자기검열 (self-censorship) 없이 신의 메신저로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나는 지난 20년간 백인사회에서 목회하면서 이 분들의 잘 정돈되어 있는 모습, 잘 생기고 아름다운 겉 모습에 매료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겉 모습과는 달리 그 속은 오래 전부터 썩어 문드러져 있음을 자주 발견하곤 했다. 영적으로 오랫동안 피폐되어 있고 그래서 마른 나무가지처럼 건조하고 말라버린 영혼들을 자주 만난다. 그래서 그들의 인간관계가 짐승만도 못 할 때가 많다. Hollywood에서 만들어 내는 영화들은 온통 sex, drug, violence로 가득차 있고 젊은 영혼들을 향하여 독화살을 각종 뉴 미디어와 high technology를 통하여 품어내고 있다. 생기를 상실한 종교단체인 서양의 교회가 이를 막아낼 수 있는 방패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도 미흡하다. 과학으로 무장된 지성인인 21세기 영혼들에게 문자적으로 믿어왔던 성서해석은 더 이상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한국교회는 불행히도 예외다. 아직까지는 . . .그러나 이것도 시간문제라고 본다. 물론 서양사회에서도 감성에 호소하는 교회들이 제법 그 기능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 근본 메세지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소위 mainline 신학교들이 오랫동안 신화화 되어 있던 성서를 비신화화 작업을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틀을 교회에 적용했을 때 교인들의 심령이 풍지박살나는 것을 경험해 오고 있다. 혼돈과 불안과 공포와 불확실성을 강화시킬 뿐이다. 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비신화화 작업을 넘어 성서의 재신화화 작업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방법론 중에 하나가 성서를 allegorical하게 읽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Hartland-Jacksonville 교우들과 이 작업을 했고 그리고 교우들의 마른 가지에 새싹이 움틈을 지켜보았다.

    4) 임마누엘 교회의 사명과 비젼_

    나는 캐나다에 온 이래로 연합교회 안에서 연합교회를 위한 목회를 하도록 훈련받아왔다. 비록 임마누엘이 연합교회의 범주 안에 있어도 이민사회를 그 기본 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특수 목회요 특별한 훈련과 Talents가 필요한 목회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 자신을 준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질 않는다.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언어와 생각의 구조 틀이 다른데서 오는 불필요한 stress 와 긴장감,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한국사회/한국교회 또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민사회와 교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라는 초월적인 힘을 필요로하는 기복적인 신앙인이 다수인 사람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 그리고 지금은 권력화되어서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행사하는 교회, 한편 사회로부터 개(dog)신교, 개독교, 개목사로 조롱을 받는 세속화되고 대형화 된 교회, 그 구조속에서 임마누엘은 지난 5년동안 최성철 목사님과 더불어 새 패러다임을 구축하기 위해서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을 나는 지켜보았다. 남들 다 가는 넓은 길을 나두고 좁은 길, 좁은 문을 향해가는 임마누엘이 자랑스럽기도하고 한편 애처롭기도 하다. 그러나 그 좁은 문은 임마누엘이 가야만 할 길이요 그것이 임마누엘의 시대적 사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임마누엘의 JNAC Report 읽으면서 느낀점은 지난 5년의 여정이 결코 순조롭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진일보한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함 또한 감지된다. 한가지 다행한 점은 현재의 자신들의 모습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남들이 한번도 가 보질 않던 길을 개척하고 간다는 것은 쉬운 여정이 아니다. 시행착오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번 내디딘 길, 앞에 장애물이 많다고 오던 길을 되돌리고 그래서 다시 산을 내려와 남들이 가던 길을 쫒아가는 우를 범하질 않기를 바랄뿐이다. 나는 임마누엘이 한인 Community나 교회로부터 고립되거나 소외되어지고 있다는데 동의하질 않는다.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는 말이다. 신앙생활을 통해 누구나 도달하고 싶은 최고점이 있다. 천국이라고 해도 좋고 해탈의 경지, 열반의 세계라고 해도 좋다. 천국에 이르는 계단이 있다고 하자. 기존교회들은 이 계단을 오르는데 6계단이상을 오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즉, 영적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시작하는 나이인 6살이상으로 자라는 것을 위험한 것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넘어서는 안될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으면 이단이라고 정죄한다. 임마누엘은 지난 5년동안 최목사님과 더불어 이 선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보수적인 근본주의적인 한인교회로부터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것 맞다. 그것은 한 두계단 뛰어 올라있기 때문에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다. 사춘기의 신앙적 여정을 하고 있는 임마누엘을 향하여 코흘리게 어린이들이 칭얼거린다고 그들의 비위를 맞춘다거나 그들의 세계관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성교회와 목사의 권위에서 100여년 이상 신음하고 앉은뱅이들처럼 앉아만 있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한 계단 더 높은 그리스도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선구적인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것이 임마누엘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믿는다.

    임마누엘이 새 패러다임속에서 신속히 정립해야할 것은 첫째로, 전 구성원이 자기 신앙을 재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지금 어디어 서 있는 지 점검하는 것이다. 옛 패러다임에 있는 지, 새 패러다임에 들어와 있는 지, 아니면 양다리 걸치기 상태인 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 희망, 새로운 방향성, 그리고 구원의 확신이 세워져야 한다. 젖 먹는 유아기적 신앙인이 아니라 채소도 고기도 자기 힘으로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이를 가진 성인의 신앙인 임을 자각하자. 그래야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서 당당하게 새 고기맛 – 기쁜소식을 전할 수 있고 2세3세인 자녀들에게 자기의 신앙을 전수할 수 있다. 각자에서 질문해 보라. 지금 내가 믿고있는 신앙을 나의 자녀들에게 전해 줄 수 있는가? 그들과 대화하면서 당당하게 그들을 나의 신앙으로 설득할 수 있는가?

    두번째 임마누엘의 사명은 빠른 시일내에 English Speaking Congregation을 회복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 듯이, 사람은 영과 육, 정과 신의 결합체이다. 당신들의 자녀들은 어디서 어떻게 자신들의 영성과 신성을 돌보고 있는 지, 이것이야 말로 21세기 교회의 최대의 도전이요 미션이라고 믿는다.

    세번째는, 임마누엘의 website의 적극적인 활성화를 기대해 본다. 미디어 시대에 설교, 예배, 찬양대의 성가등이 동영상으로 방영되어야 한다고 본다. 토론토 이민사회에 기성교회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기성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과 불필요한 논쟁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 생각된다. 기독교라는 범주 내에서 새로운 답을 찾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임마누엘 공동체로 초대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말 설교 동영상뿐 아니라 영어설교 동영상도 매주 Youtube등을 통해 방송되어져야 한다. 임마누엘에 40대 이하가 없다는 소리는 미래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교회는 뭐니뭐니 해도 예배 공동체다. 같이 모여 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속에서 하나됨을 느끼고 한 형제 자매임을 경험한다. 무엇보다도 그러므로 교회오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기대로 가득찬 사람들의 영적 몸어야한다. 1년 안에 교우 개개인이 기도하면서 한 영혼을 임마누엘로 인도하면 매주 100명이 예배드리는 교회로 성장할 것이다. 다른 교회 잘 다니는 사람 steal 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 낯선사람들을 초대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주일학교, Youth group, 기타 다른 영역에서도 교회의 건강성을 회복할 것이다. 기쁨과 웃음이 가득하면 그 교회는 반드시 내적 외적으로 성장한다.

    5) 맺는 말_

    이민사회와 이민교회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써 위에서 처럼 제안한다는 것이 지나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자도는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길은 좁고, 험하고 무거운 길이다. 예수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Mark 8:34 “If any want to become my followers, let them deny themselves and take up their cross and follow me.) 광신도가 아니면 기독교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불쌍하지 않는가! 나는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불쌍함을 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적 분노를 느낀다.

    세상에 종교가 이렇게 사람을 무지하고 몰상식하게 만들다니!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끓어오르는 연민의 정을 가슴속 깊이 담아둔다. 누가 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단 말인가! 구약의 요나처럼 다른 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신의 아들인 예수의 겟세마네에서의 마지막 고뇌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한 제자로서 나 또한 예수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마태26:39)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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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상합니다.
    그리고 실망했습니다.
    바보스쿨이 믿을만한 비평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 하고, 예수님을 부활 된 것이 아니라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임의로 적고 싶은 것을 적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감동했다고 평을 한 것을 보니
    순두게라는 분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평을 한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평을 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실망, 또 실망하였습니다.

    개신교에 잘못된 것이 많은 것을 철저히 인정하는 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의 근본을 뒤흔드는 사람을 칭친하는 것을 보면
    순두게 당신도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으로 일하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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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ames님께서 이 비평문과 관련하여 댓글 대신 자유게시판에 새로운 글을 “이상합니다. 그리고 실망했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올리셨습니다. 이에 대해 저의 생각을 자유게시판 해당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
    James 님 께서 거의 같은 내용의 글을 자유게시판에도 올리셨길래, 정목사 설교 관련이어서 일단 이곳으로 퍼왔습니다.
    ====
    임마누엘 한인 연합교회 ㅈ 목사에 대한 평을 보고….

    이상합니다.
    그리고 실망했습니다.
    바보스쿨이 믿을만한 비평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 하고, 예수님을 부활 된 것이 아니라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임의로 적고 싶은 것을 적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소위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감동했다고 평을 한 것을 보니
    순두게라는 분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평을 한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평을 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실망, 또 실망하였습니다.

    개신교에 잘못된 것이 많은 것을 철저히 인정하는 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의 근본을 뒤흔드는 사람을 칭친하는 것을 보면
    순두게 당신도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으로 일하는 사람입니까?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고 설교의 서문에서 시작하는 교회,
    ‘예수는 없다’고 말하는 오강남 교수를 초청해 강연회를 하는 교회,
    순두게 당신도 같은 부류인가 봅니다.

    아니면 당신은 파괴를 위한 비평을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제대로 건설하려는 의도가 있는 비평을 하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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