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 인 악한 사마리아 인

Good Samaritan – 선한 사마리아 인 악한 사마리아 인 ?

벌써 3년이 다 되어갑니다. 바보스쿨 구역예배 –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라는 제목으로 미가서를 같이 나누었던 일이 벌써 3년이나……

오늘 구역예배는 그때 그 이야기로 부터 시작하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 등등 성경의 유대 역사서에 보면 디글랏빌레셀(Tilgath-Pilneser)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요, 앗수르왕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구약 역사서를 읽어 갈 때 조심해야 할 것은, 특히 왕의 이름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성경에는 디글랏빌레셀(Tilgath-Pilneser) 이렇게 쓰여있지만, 실제로 시리아 역사는 디글랏빌레셀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한둘이 아닙니다. 1세, 2세 혹은 3세(Tilgath-Pilneser I,II or III) 이렇게요. 혼란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에스라서의 아하수에로왕 기억하시지요 ? KJV에서는 Ahasureus, NIV에서는 Xerxes로 표현됩니다 모두 다 헬라어 표기입니다. 왜냐면 Septuagint – 70인 역은 헬라어로 쓰여졌자녀요. 4장 6절까지는 역사서 이름인 캠비세스 왕인데 성경에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둔갑합니다. 그러면 에스더의 서방님도 아하수에로인데 ?&^%$#@,, 글구 그 서방님은 다리우스 왕 이후의 왕인디…. 도대체 계산이 안되네요…. 계산이..

이게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요 ? 페르시아 고레스 왕이 죽은 후, 아들인 캠비세스가 등극합니다. 그는 고레스왕의 임종 시에 한가지 약속을 합니다. 이집트 정복입니다. 그가 이집트 정복 원정 중에 페르시아 궁궐에서는 캠비세스의 동생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왕행세를 합니다. 한편, 캠비세스는 원정을 끝내고 귀향하는 중에 죽습니다.

이때 군벌의 신뢰를 얻은 다리우스가 캠비세스의 가짜 동생을 죽이고 등극했고, 다리우스의 후계는 또 다시 아하수에로, 그가 바로 에스더 서방님입니다.

이제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

오늘 이야기는 그 보다 쬐끔 먼저 디글랏-빌레셀왕 때입니다. 그가 앗수르 왕으로서 유브라테스 강 주변 군소 국가들을 점령합니다. 이스라엘도 별 수 있나요.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일으키셨는데 말 않든는 이스라엘 유다 사람들에게 죄값을 주시려고.

그래서 이스라엘 땅 그 중에 사마리아를 점령해 버린 후 백성들을 강제 이주시켜 버립니다. 현대전은 폭탄이 말을 하지만 옛날에는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을 몽땅 떠다가 다른 곳에 옮겨놓고 노예로 부려먹는 전쟁습관이 있었나 봅니다.

몽땅 떠가는 것도 모자라서 다른 민족들을 신규 식미지에 역으로 강제이주 시켜, 어느 날 이웃 집에 생전 처음보는 괴상하게 생긴 외모에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이 들이 닥친다… 상상이 되십니까 ?

그 사람들이 강제 이주되어 들어 올 때 이삿짐만 가지고 왔을까요 ? 천만에, 그들의 산신령님들도 함께 모시고 오셨겠지요.

잊지마십시요,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이 야훼를 향하여 맨 처음 단을 쌓았던 유대 종교의 실질적 시작 지점, 바로 세겜이며 사마리아 땅었다는 점을.

사마리아 땅은 앗수르의 조공국가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돈 안바치면 목숨이 보장이 않되는 그런 시스템이었습니다.

가는 세월은 아무도 못막는 법, 앗수르 왕도 한번은 죽어야 했기에, 즉 권력 교체기가 있었다는 말씀. 이 때를 노린 사람이 바로 사마리아의 호세아왕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소(So)라는 이름의 왕과 결탁하여 앗수르에게 돈 안내고 뺀질거렸던 호세아, 살만에셀이라는 앗수르 왕에게 혼쭐이 납니다.

살만에셀, 역시 몽땅 떠서 앗수르 제국 전역으로 뿔뿔이 강제이주시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강제이주를 면한 사마리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역으로 강제이주 당해 들어온 이방인들과 남았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서로 혼인을 하고 그들의 산신령님께 절하고 하여 야훼를 열받게 했다고 쓰여있습니다.

나는 이 역사서를 문자 그대로 읽노라면, 야훼는 코미디 극작가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자신의 백성이 말을 안들으면 그들의 DNA염기 서열 하나만 비틀면 될 것을 그 대신 앗수르 바빌런 페르시아 이런 강대국을 일부러 창궐시켰다 ??

다행히도 “하나님의 영감을 빌어” 라는 사족을 달며 사람이 썼기 망정이지……

그것은 각설이고요,,, 이때부터 유대인은 사마리안들을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더러운 피를 섞은 배신자 사마리아인, 그래서 유대인들의 S word가 되어 버린 사마리아.

증오의 싹이 텃으니, 이제 그 골이 깊어지는 일만 남았습니다. 앗수르를 이은 바빌런, 유명한 느부갓네살 왕, 역시 그 때도 유대인들은 포로로 붙잡혀가면서 바빌런강가에 앉아서 By the rivers of Babylon 노래를 눈물로 불러야 했었지요.

근자에 이란의 핵땜에 미국의 오바마가 골머리를 앓지요. 이스라엘은 호시탐탐 이란의 핵시설물 원거리 폭격을 꿈꾸고 있었음을 넌즈시 알리는 기사가 매스미디어에 간혹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라크가 무너진 후 중동의 새로운 강자 이란 – 페르시아, 2500년을 한결 같이 버텨온 국가 페르시아, 이란, 성경에는 바사. 이란사람들에게 어디 출신입니까 라고 물으면 이란 대신에 페르시아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이 바사를, 페르시아를, 오늘 날의 이란을 개국한 이가 바로 하나님의 오른 팔 고레스왕입니다. 이스라엘 저 선수들도 너무도 잘 알고 있지요. 왜냐하면 제가 쓰고 있는 이글의 대부분의 원천 자료가 바로 유대인들이 쓴 책에서 얻은 지식이니까요. 그거 한가지만 갈쳐달라고 물으신다면, 성경입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강제 징집된, 헬라어와 히브리 말에 능통한 유대인 70여명이 70여일만에 개작한 Septugint, 누가 뭐래도 성경입니다.

고레스왕은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주변 국들에게 성전도 좀 잘 짓고 성벽도 복원할 텐데 잘 좀 도와주라고 칙령까지 내립니다.

그래서 스룹바벨 예수아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이들이 돌아 와 하나님의 집과 무너진 성벽을 복원하는 일에 착수합니다. 이때 이미 사마리아 땅에서 왕 노릇하던 산발랏과 그 주변 국가 꼬마 왕들이 위기감을 느낍니다. 유대가 힘을 얻으면, 정치/외교의 긴장의 파고가 높아짐을, 제가 왕이 된다 해도 그 정도는 직감으로 느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사 왕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내용이 에스라 4장 7절 이후에 그대로 적혀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실 때 조심해야 할 사항은, 아르닥사스(Artaxerxes)라는 왕 이름인데요, 에스라 4장 7절-23절에 나오는 아르닥사스는 캠비세스 왕의 동생 행세하다가 다리우스에게 죽은 가짜 왕의 이름이고요, 느헤미야서와 에스라 4장 이후에 나오는 아르닥사스는 다리우스의 아들로서 다음의 왕입니다. 바로 이 아르닥사스 왕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벽공사와 성전을 마무리 짓도록 허락한 왕입니다.

그 당시에 오고 간 편지 내용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사람들의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는 과거 어떻게 대들었으며, 그들이 힘을 얻으면 역시 또 대들것이다 그러니 그 공사를 중단 시켜야 한다고 사마리아를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고자질합니다. 그리하여 공사가 2년동안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그러쟎아도 밉상인데,,, 한 술 더 뜨는 사마리아인들.

아마 그 감정의 최고조는 마카비 항쟁일 겁니다. 마카비가 뭐냐 라고 물으신다면, 한마디로 님께서는 교회당과 사교클럽을 구별 못하심을 스스로 인정하시고 계신 겁니다. 교회에 가셔서 담임목사 싸대기를 갈기심이. 맞어도 싸. 제말이 아니고 누가복음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도 몽둥이질 발을 애덜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정벌 , 그리고 헬라 문화, 이런 것들이 유대교와 무슨 상관 ? 한마디로 “유대인들아 앞으로는 성전에서의 예배형식은 제우스 신당처럼 해야된다” 이겁니다. 힘이 없어 나의 나됨을 포기하는 각서에 쓰여 있는 terms and conditions.

왜넘들이 조선기독교 먹사들에게 했던 말, “앞으로 교회당 예배 시작할 때 남산 신사를 향해 먼저 묵도한 후에 예배를 시작하거라” – 지들 말로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묵도로 예배를 이끌고있는 돌대가리 먹사들, 똥된장 못가리는 5살짜리 사고수준의 먹사들.

유대인들이 가만 있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봉기를 일으켰고 마카비라는 사람의 가문 사람들로 부터 시작되었고, 사마리아인들은 이 때 한발을 빼버림으로서, 이제 유대인(갈릴리 촌놈들 포함해서)들은 대놓고 바보 사마리아(foolish people) 이렇게 부릅니다.

사마리아, 저주의 땅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누가복음 9장 51-56절

51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53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56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누가 복음 9장은 먹사들이 설교 혹은 말씀인용을 위해 즐겨 찾는 장입니다. 열두제자 파송, 오병이어, 베드로 고백, 예수의 변모, 간질병 어린이 그리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 데 인자는 잘 곳이 없다 그러니 성전건축에 반드시 참여해라 라고 윽박지르기 좋은 예제들, 사실 교인들 구워삶는 데는 이거 하나면 댁길입죠.

바로 오늘 본문 말씀가지고 설교하는 목사는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너무도 맹탕이니까요.

“예수께서 죽으러 예루살렘에 가신다. 사마리아를 통해 가신다, 준비해라,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오 그래 그러면 다른 마을을 거쳐서 가자” 요게 다입니다. 무슨 건덕지를 끄집어 낼 수가 있으리요 그 게을러 빠진 족속의 대명사 목사들, 온통 똥으로만 머리통 속을 채운 목사들, 너무나 불쌍한 그대 야바위 전문가 목사. 공부욜씸들 허거라.

여러분, 제가 앞서 장황하게 써 놓은 글에서, 뭔가 집히십니까 ? 그것이 바로 메세지입니다. 영락교회 송민호가 말하는 것 처럼, 자 – 1번 메세지 지금 나갑니다, 2번 메세지 지금 나갑니다 이렇게 중국집 철가방 소년처럼 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예수는 이제 다시는 육신으로 못 올 길을 감에 있어서, 그 토록 깊은 증오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의 시신을 모신 영구차가 동네 어귀에서 철천지 웬수가 막아 설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 길로 영구차를 들이 대시겠습니까 ?

예수께서는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택했습니다. 당연히 거부되었습니다. 한 맺힌 사마리아인들은 자존심도 없단 말인가요 ?

갈릴리 촌넘 유대인 조차도 용서가 안되는 사마리아인들.

그래서, 다른 길을 택했다고 누가는 기록했습니다.

이번에는 요한복음을 볼까요. 이번엔 거꾸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예루살렘은 지중해 기준 해발 800미터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그 아래 요단강 사해는 지중해보다 더 낮습니다. 사마리아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긋는 직선상에 위치합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는것이 훨씬 빠르겟지요.

그러니까, 지중해를 우리나라 인천 앞바다쯤, 예루살렘을 태백시쯤, 요단강과 사해를 속초에서 남쪽으로 주-욱 닦아 놓은 해안도로. 강원도 인제는 갈릴리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태백산맥 남쪽의 도시 태백시(예루살렘)에서 강원도 인제(갈릴리)로 걸어서 가야한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여러분 같으면 태백에서 동해안 쪽(사해와 요단강변 도로)으로 내려가서 해안 평지를 걸어 북상하여 속초에서 다시 설악산을 올라 서쪽으로 인제로 가시겠습니까 ? 아니면,

막바로 태백에서 산맥능선을 타고 그대로 북진하여 인제로 가시겠습니까 ?

우린 지금 시간을 돌려 2000여년 전 유대땅으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직선 길인 산맥능선을 타고 북상하여 횡성의 대관령(사마리아)을 지나 인제로 가야하는 거 아닙니까 ? 대관령(사마리아)에 무시무시한 산적들이 길목길목마다 지켜 서 있다면…

예수 당시에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대인들에 대해 엄격한 통행금지를 적용하고 있었음이 오늘 본문 말씀에 그대로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사는 맹탕기사가 아닙니다.

그들은 멀어도 하는 수 없이 800미터 아래에 위치한 요단강 쪽으로 내려가서 강변 도로를 타고 북상하여 산을 올라 갈릴리로 가곤 했답니다. 사마리아 땅을 돌아서 갔다, 그 땅을 밟기도 싫거니와 지나가게도 못하는데 굳이 그길을, 멀더라도……

이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과 유대인 랍비 예수의 만남 사건에 대한 기사의 파괴력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마리아,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던 어휘였답니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해라, 예수가 준 새 계명입니다.

우리가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은 아주 쉬웁니다. 시쳇말로 유유상종이랄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 바보스쿨러들은 몸서리가 쳐지도록 당해왔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목사에 대해 나도 같은 착각 속에 빠져 같은 말을 뱉을 때, 그들은 우리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하면서 가슴정도이 높이로 들고서 복음성가도 열심히 불렀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불협화음 음계와 신디사이저에 의한 최면에 걸려든 거죠.

어느 한 순간 우리는 사랑해선 않될 마귀들로 모르는 사이에 둔갑해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그 목사에 대해 거친 소리를 할 때, 그들이 평생 쌓아 놓은 바벨탑에 심각한 대미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한 평생 쌓아 온 맘몬에 침을 뱉는 우리는 더 이상 사랑해선 않될 사람들입니다.

최면 기술자들에 의해 교회에서 신음하는 우리의 부모형제들, 우리 바보스쿨러들은,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것처럼, 사마리아를 죽음으로 가는 마지막 길로 삼았던 예수처럼 정면 돌파해야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라가라 하는 것이나, 그들이 우리를 향하여 마귀라하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먹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마땅하나, 오호라 곤고합니다. 내 부모형제들을 광신의 길로 이끌어 간 저들에 대해, 나도 인간인지라,,,,,,

당부의 말씀: 이 설교에는 거친 어휘들이 있습니다. 혹여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설교라는 이름아래 어떻게 감히 이런 상소리를…… 생각이 드시는 분들께, 틀리지 않으신 생각입니다. 이설교를 그대로 인쇄하신 후 손에 들고 님께서 출석하시는 교회 목사를 만나서 보여주십시요. 바보들인 평신도도 이정도 공부는 하는데 당신은 돈 바더 먹으면서 도대체 뭐하시는거야 라고 따지신 후에 이 곳 댓글란에 저를 꾸짖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한테만은 뭐라 하실 줄은 알면서도 목사한테는 끔쩍도 못하시는 분들로 부터 꾸지람을 듣는 저는 쬐끔은 억울할 것 같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 악한 사마리아 인”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오늘 오랜신앙의 벗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에 highway를 달리는동안 앞이 안보이는 엄청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암울한 교회의 현실을 걱정하다가 속 시원히 windshield 때리는 빗방울들을 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읍니다.
    정체된 교회를 향해선 일깨우는 두드림으로 바보스쿨을 향해선 속 시우ㅓㄴ히 씻으내는 단비로 —

    이렇게 비오는 날은 추억에 젖어 옛 구역예배를 보곤 하는데 다시보니 이 짧은 글속에 고레스로부터 캄비세스,아하수에로a,아하수에로b(무지 헷갈럈던 부분이였는데),사마리아의 아픈 역사의현장, 헬라에서 마카비, 예수 시대의 민족의 아픔까지 광범히 널려있네요. 평신도로서 대단합니다.
    50년 넘는 교회생활속에서도 듣도보도 못한부분이 많았읍니다. 앞으로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많이 가르쳐주시길 —-
    바보스쿨 아자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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