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 예수의 죄

나사렛 예수, 그는 왜 우리들의 표적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는가?

도대체 예수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라고 단순하게 묻지를 마라.,

사실 예수가 한 일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만 백성에게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한 것 밖에 없다.

(눅 5:20,21)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눅 5:30-32)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6: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눅 6: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눅 6: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눅 19:47, 개정)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눅 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여기서 우리라고 표현한 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바리세인들은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성전을 둘러싼 이권과 무지한 백성들을 다스리는 정치일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알게 모르게 서로 견제 하는 일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오랜 세월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족보도 없는 나사렛에서 나타난 예수라는 젊은 친구 때문에 우리뿐만이 아니라 저 간악한 헤롯과 침략자 로마 정치세력과도 암묵적 연대를 맺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하긴 했으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 유대인으로써 예수를 로마의 손에 넘겨 준일은 수치스러운 일이였다.

왜 우리는 예수를 죽이려고 했는가?

사실 위에 열거한 예수의 기적과 이적을 행한 사실만 놓고 본다면 예수를 죽이기는 커녕 자랑스러운 일일 테지만 민족의 장래를 책임져야 하는 우리들은, 표면에 나타난 행위보다는 행위 뒤에 가려진 의도를 눈치 챌 수 있어야만, 정치 지도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기적과 이적을 행하고도 재물이나 명예를 원치도 않고 선량한 시민들을 선동하면서, 더군다나 우리들을 싸 잡아서 회칠한 무덤이라거나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독설을 퍼붓거나, 로마 앞잡이 해롯을 여우라고 칭해 야기될 불상사로부터 우리 유대민족을 침략자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우리에게는 그의 행위와 민중선동이 경계대상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행위 뒤에 가려진 정신적 음모가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 유대민족이 나라를 잃고도 오랜 세월을 하나님의 선민, 유대민족으로 살아남아 정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모세의 법, 즉 율법이었는데 그는 그 법에 도전하는 것이였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해가며.

유대민족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거룩함으로 선민으로 구별되야만 하는데, 오히려 죄인들과 어울리며 지도층을 모함하는가 하며, 요한과 그의 제자들은 단식한다고 하자 자기는 잔치의 주인이니 먹고 마시는게 당연하다고 하지를 않나, 안식일도 일부러 도발하듯이 범하고선 자기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하며 교묘히 무지한 민중들을 선동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였다.

그의 기적과 이적은 놀라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비유와 성경해석 뒤에는 민족의 율법과 선민의식의 근간을 뒤 흔드는 중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것을 우리는 직시 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전통적 규례를 왜곡하고, 유대 고유의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계속된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당히 타협할 줄도 몰랐고 그의 해석만을 주장하고 우리 민족의 법과 질서에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에 짧은 인생을 마감하기에는 쪼끔 아까운 재능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우리는 그를 유대민족의 미래와 하나님을 법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처형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순절 – 예수의 죄”에 대한 4개의 댓글

  1. 마르다형제? 혹시 메시아닉쥬?아니신가요..요새,유행하는세대주의적? 어떤성경 역본을 읽고 들으시나에 따라 묵상도 진리안에서?
    비진리 안에서 라고 권면드립니다..영원한생명이 걸려있기에 목숨을 걸고 전하셔야 합니다.예수가 4대 성인중에한분?아니죠…
    여호와의 증인같은 말씀 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를걸림돌이 되게 하시면 미혹의영? 혼란스럽게 하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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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닉네임이 너무 특별하시네요 “하나”님 ?? 아님 “하나님” ??

    저는 요즘 그흔한 집사도아닌 평신도올씨다. 뭐 메시아닉쥬, 세대주의적? 이런이야기 처음듯는소리고요 국어 독해실력도 핵교댕길때 특출하지않아 ‘하나님’의 뎃글을 잘 이해 못하겠군요

    특별한비평, 내지는 해설없이 윗글을 ” 비진리 ” 라고 단정하샸는데 난해합니다. 혼란스럽네요!!

    “하나님” 혹시 신천지는 아니시죠… 그럼 자세한 지도편달 바랍니다. 님의 설명을 이해할수만 있다면 내 신앙생활에 큰 기쁨이 되겠읍니다. 꼬옥~ 요!! ”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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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라는 분의 댓글에 나타난 난해(?)함을 보면서 답답함과 참담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한국교회 근본주의 신앙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막가라” 식의 언어가 따로 있어 보입니다.
    오로지 자기 혼자만 이해하는 자기도취식 언어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 분을 통해 여기서도 그것을 또 다시 봅니다.

    죄송하지만, 참 않됐습니다.
    언어는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지는 것 일텐데, 오로지 자기만 알 수 있는 술취한 말로 해대니…
    초등학생 국어 실력도 않되는 언어실력으로 댓글을 쓰시는 “하나” 라는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정말 궁금하네요.

    마르다님께서는 오지랖도 참 넓으십니다.
    이런 사람의 횡설수설을 진지하게 또 이렇게 성실히 답변해 주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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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본인입니다 .한국에서 떨어져서 살다보니 띄어쓰기가 잘 안되고요 .하나 라고 하면 ..사람이름밑에 님 자가 붙는줄 몰랐어요…
    국민학교 수준이라고 해도 할말이 없네요.남의나라 에서 고양이 이름을 하나 라고 지었고요”매일 부를때마다 한국어를 귀로 들으니깐,
    좋고요..잘 못알아 들어서 막가라 가 되고 말았네요.세대가 바뀌고 나이들면 이렇게 되네요.다음 부터는 댓글 달지않고,배울께요…안녕히계세요…주님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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