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 누가 용서 할 수 있는가?

(눅 23: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눅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 23: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눅 23: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지만 이 땅에 전쟁의 소문은 늘어만 간다. 오늘날 초 강대국이라는 세계 경찰을 자칭하는 미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200년간 전세계 국제 전쟁에 160여 회를 관여했다고 한다. 지금도 한국을 비롯해 중동과 전세계에서 매일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지만 그 누구도 스스로 악의 축이라고 자칭하지 않는다. 독립을 위하여,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심지어 평화를 위하여 너도 나도 죽이고 있다. 분명히 미친짓인데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고, 멈출 방법도 없는것 같다.

2천여년전 유대땅 해골산에도 또 다른 죽음의 모습으로 십자가를 메고 죽임을 당하는자와 권력의 채찍을 들고 죽이는 자들이 있었다. 어째서 이땅의 사람들은 함께하며 서로 사랑하기도 짧은 삶인데 권력과 이권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저 끔직한 죽이는 일을 저리도 서슴치 않는 걸까?

사람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버림을 받고 이 땅으로부터는 사람들의 미움과 채찍에 힘겨워 십자가의 무게도 감당치 못하고 비틀거리며 죽음을 향해 끌려가고 있었다. 이 땅의 끝으로 여겨지는 해골산에 이르러 몇번의 망치질이 끝난뒤 유대인의 왕이란 팻말과 함께 산 위 십자가에 높이 알몸으로 메달림으로써 이 땅을 향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을 깨달아 하늘과 땅이 어우려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그러나 십자가 아래서 폭력을 행사한 자들은 들을 귀가 없기에, 여전히 그를 희롱하고 한 사내의 육신을 죽일 수 있는 폭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 땅의 사람이 죄인임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무서운 죄악이 하늘과 땅사이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의 권력과 욕심이 하나님의 법을 이기고 있는것 같았다.

마지막 숨결을 헐떡이던 그가 마침내 하늘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향해 이 땅의 사람들을 대신하여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철저히 용서를 빌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사순절과 고난” 이라는 제목아래 예수의 구별된 삶이 다른 역사적 수 많은 십자가와 구별되는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누가복음을 통해 확연히 깨달았읍니다. 자기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메달아 죽이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가 용서를 구할 때 비로소 성소 안과 밖을 나뉘던 휘장이 찢어지고, 하늘과 땅이 연결 되는 것임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이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용서만이 진정한 구원 사역의 완성임을!

이 십자가의 사건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結者解之 – 잘못한 사람이 용서를 구한다고 용서가 되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죄인된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거스리는 것은 예수 혼자서 용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창조자 하나님이 함께 용서 해야만이 비로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임을 !

창조 이후로 이 세상 끝날까지 하늘과 땅 사이의 가장 치열한 전쟁인 생명과 죽음의 한 가운데 – 십자가 위에서 이미 죽은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홀로 단 한번 뿐인 진정한 영적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는 욕심과 탐욕과 죽음을 향해 절대자의 더 큰 힘으로 짓누르고 꺽음으로 굴복시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용서로 끝내 부활의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사순절 – 누가 용서 할 수 있는가?”에 대한 2개의 댓글

  1. 나는 이글과 이전의 사순절글들을 읽으면서 서울의 대형교회 목사가 한 말을 옮겨 적었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끝내 떨치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까지 다 읽고, 마르다님의 깊은 성경읽기에 놀라울 뿐이다. 이러한 높은 수준의 성경읽기 공력을 평신도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들은 바치면 복받는다 수준에서 왜 벗어나지 못하는가,,, 우리교회의 그런 덜떨어진 목사를 보면서 그저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밖에는 안든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일을 안하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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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는자는 용서가 가능할것 같은데
    저들이 하는 짓을 저들이 알면서 의도적으로 하는 짓거리는 용서가 안되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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