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진주를 돼지앞에 던지지 말라

목사들은 ” 고난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매년 사순절이 돌아오면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받아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케하고 고난의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인류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구속사역을 연계시키며 교인들에게 예수의고난을 뇌리에 강조합니다.

“십자가와 고난”이 구원사역 필수 요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고난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은 예수가 이 땅에 와야만 하는 인간의 타락을 희석시키며, 고난을 미화할뿐 아니라 일종의 마조히즘적인 자학교인으로 주눅들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겪은 고난을 되 새기며, 의미를 부여하길 즐겨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삶 속에서 격는 고난”‘과 “예수의 고난” 이 같은것인가요 ?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고난 사건이 이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그 사건으로 우리에게 달라진것이 있습니까?

독립투사들의 고난과 희생이나, 625를 통한 민족의고난과 희생정신은 역사를 통해 우리들에게 눈에 보이는 깨우침과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주었지만,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난으로 죽었다는 것 때문에 이후의 세상이 달라진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매년 사순절때마다 강조되어지는 예수의 고난은 어떤 의미로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목사들의 산파쪼의 평신도 심금 울리기작전이지 의미가 없는 넌센스 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십자가와 고난은 의미 없는 헛된 죽음일까요?

그럴 수는 없겠지요?

만약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결코 앉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또, 예수가 이땅에와서 오래 장수 했거나, 예수께서 쓰나미에 죽었거나 중동땅의 전쟁포화속에 죽었다면 예수는 인류의 구원자일 수 없는건가요? 예수가 우리 구원자가 되기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어야만 했냐는거죠 ? 물론 당연히 예수의 고난의 가치를 부정하자고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진정한 예수의 고난의 의미보다는 바벨탑처럼 높아만 가는 종탑을 보노라면,

오늘날 기독교는

그냥 종교라는 상품,

예수라는 상품을 사고 파는 장사꾼에 불과할 뿐,

그 상품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지도 않는 바쁜 평신도들과

그 내용을 가르칠려고도 하지 않는 거짓 목사들의 신나는 놀이터 일것 같은 쓸쓸함이 듦은 — !!!

이것들아 ,

거룩한것을 개에게 주지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노라. ( 마 7; 6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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