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 기다리는 사람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어느듯 예루살렘 동네사람들에게 어른대접을 받는 나의 이름은 시므온.

세월의 흐름 앞에서 내 팔뚝을 타고 흐르던 힘찬 기운도 갸날픈 호흡을 가다듬고, 미래를 꿈꾸던 청춘의 심장도 힘없는 박동만을 남겨 놓았다.

아브라함의 언약과 출애급으로부터 시작된 우리민족은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 이후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기다림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말라기 선지자의 질타하는 외침도 끊어진지 400 여년이 흘렀고 민중을 깨우던 하나님의 음성은 잊혀져 갔지만, 우리 민족은 여전히 선지자들이 예언하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오랜 기다림에 속에 사람의 뜻을 이루려는 몇 몇 사람들이 민족을 깨우며 이방민족으로부터의 주권회복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찾을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더큰 민족박해와 좌절만 경험했을 뿐이였고, 그 격변의 역사 가운데 특별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가문도 유별나지 못한 나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늙은 유대인일 뿐이였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시대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민족 저항의 깃발아래 청춘을 불 사르지도 못한 체, 세월앞에 목놓아 울고 있는 바보로 보였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단순한 매일의 지극히 평범한 삶을 이겨낼 힘과 아픈 민족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봐야만 하는 의무와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죽기전에 메시아를 볼 것이라는 성령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주시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바보처럼 내 자리를 끝까지 참고 지키면 내 삶(혹은 민족)을 짓누르는 아픔을 위로 할 메시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성령의 감동이 이렇게 쓸모없는 늙은이가 될 때까지 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성령의 감동이 날 성전으로 이끌었다.

(눅 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나의 이름은 안나. 왜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느냐고요?

유대땅에서 수십년을 과부로 살아가는 늙은 여인을 상상해 본 일이 있나요?

비록 선지자라는 명함이 있긴 하지만 사회로부터 외면 당하고 경제적 빈자의 척박한 삶과 한이 과부를 예루살렘 성전외에는 갈 곳이 없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읍니다.

물론 나에게도 이팔청춘일때가 있었지요! 남편의 그늘 아래서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살아가는 지극히 일반적인 미래이긴 했지만 그런 펑범한 꿈도 결혼 일곱해만에 남편을 잃어버림으로써 나에게는 슬픔과 외로움만이 남고 말았지요. 유대땅에서 자식없이 남편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고 그 두려움과 한숨은 나로 하여금 성전에서 하늘을 향한 기도가 되었고 하늘의 위로만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이었읍니다.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눅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 2:38) (안나가)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온 나는 메시아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는 감격이였다. 하루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예루살렘 성전. 그 중에서도 잘난 제사장, 레위인, 바리세인, 사두게인들도 많았지만 이 쓸모없는 늙은 시므온의 팔에 안긴 메시아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많은 훌륭한 유대민족의 종교지도자들과 율법사들은 메시아를 보지도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지만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으로 가득 찬 이 늙은 과부 안나에게 하늘의 위로를 내리시고, 메시아의 도래를 직접 보게하시고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앞에 메시아를 소개하게 되는 감격을 주시다니—.

그러나 감격도 잠시.

그분의 어머니에게 쏟아 놓아야만 했던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지!

하지만 그 아픔은 한 어미의 아픔이전에 하나님과 사람의 아들사이에 희생되어야만 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아픔인것을—.

내 팔에 안긴 이 아기는 오직 한 어미만의 아기가 아닌 이땅의 위로와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죄인들을 품기 위한 아기였음을 —.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으로 가득찬 매마른 껍질 같은 이늙은이들이 하늘의 위로를 통해 만민 앞에 예비된 구원을 먼저 보았구나!!.

(눅 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이렇게 사순절은 태동되었다.

“사순절 –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나태함, 현실 안주, everything is looking good, 주일성수, 주방봉사, 주차관리,,,, 아마 이런 것들이 신앙의 본질인양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려하지않는 이상, 그냥 평범한 아기일뿐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합니다.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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