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 구레네 시몬의 회상

(눅 23:13)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눅 23:1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눅 23:15)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눅 23: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뉴톰슨 관주 주석 성경}에 23:26을 이렇게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레네는 당시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북아프리카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성읍으로서 오늘날의 트리폴리다. 시몬이 이때에 예루살렘에 있게 된 이유는 유월절 축제때는 각처에서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이기 때문이거나 예루살렘에 구레네인의 회당이 있었고(행2:10,6:9) 시몬도 그 회당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래 십자가는 처형받을 사람이 지고가게 되어 있었는데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을 만큼 약해졌으므로 구레네 시몬이 대신지고 가게 되었다. 시몬의 자손들은 후에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유월절기간이 되면 바벨론 유수 이후 천지 사방으로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절기 축제기간을 보내는게 평생의 간절한 소원중의 하나입니다.
지금의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근교의 시골로부터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온 나(시몬)는 예루살렘에서벌어지는 로마의 법, 십자가 처형행렬을 지나치게 됩니다. 당시 십자가 처형방식은 공개처형으로 고문과 수치를 당한 뒤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직접지고 형장까지 가야 하는데, 세 죄수가 있었고 특히 그 중 하나는 머리에 가시로 만든 관이 씌워져, 붉은 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그가 멘 십자가의 윗 부분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와 가학의 산물인 피에 젖어 그의 가날픈 어깨를 짖누르는 것이 민망스러운듯 하늘을 향해 그를 외면하고 다른 한쪽 끝은 생명의 뿌리인 대지에 닿아 끌리고 있었다.

도대체 그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로마 병사들 뿐만 아니라 같은 유대인들에게 까지도 멸시와 저주를 받으며 곧 쓰러질듯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저만치에서는 많은 구경군들 사이로 숨죽이고 흐느끼며 따라오는 여자들도 보였다.

수많은 인파속에 방관자의 행렬에 끼워있던 내 앞을 지나갈 때 즈음, 누구나가 느낄 수있는 그의 가쁜 숨소리는 곧 끊어질 듯 헐떡이며 육체는 이미 영혼과의 이별을 마친 고깃 덩어리 같았다. 쏟아지는 질시와 채찍에 놀래 얼떨결에 힘든 몇 걸음을 디뎠지만 그의 육체는 믿둥 짤린 나무처럼 땅으로 쓰러지고 스스로 짊어져야하는 십자가 나무밑에 깔리고 말았다.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그의 몸을 로마병정의 채찍과 군중들의 야유가 사정없이 내려 쳤지만 찢어진 육체가 힘에겨워 일어나지 못하자, 구경꾼들 틈에 끼어 그 행렬과정을 지켜보던 억세게 재수없는 나를 로마군인이 잡아다가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다.(The passion of the Christ 영화를 보면 장면이 보다 사실적으로 구성) 채찍과 힘을 가진 그들에 의해 얼떨결에 십자가를 둘러 멘 나에게 핏빛십자가를 통해 그 사내의 수치와 십자가의 저주가 내몸을 덮쳐왔을 때 내 온몸의 근육들은 소스라치고, 구경하던 뭇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기보다는 억세게 재수없는 놈이라고 비웃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억세게 재수없는 십자가의 사건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나를 방관자에서 역사의 한복판에 우뚝 옮겨 놓았다. 십자가에 뉘인 육체에 못질이 시작되자 온 땅을 덮을듯한 슬픔이 하늘로부터 퍼져 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잘 모르는 나의 이성은 잔인한 형벌의 현장을 떠나고 싶었지만 나의 발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증인으로 이 역사의 현장을 끝까지 지켜 보아야만 할것 같았다. 해골산 정상에서 찢어진 깃발처럼 걸린 그의 알몸뚱이를 구경꾼들은 비웃으며 떠드는 가운데 하늘과 땅사이에 고통스럽다 못한 침묵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의 육신은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를 그가 허공을 향해 중얼거릴때, 그 순간 내속의 영혼이 깨어나고 그는 나의 영혼에게 속삭였다.

“형제여! 나의 십자가를 나눠 져준 그대를 잊지 않겠소! 그대가 재수가 없어서 이 사건에 끼어든게 아니라, 그대 뿐만이 아니라 이땅의 모든 사람은 십자가 앞에서 한번은 마주쳐야하는 사건일 뿐이오. 힘으로 그대를 다스린 저들을 미워하지 마시오. 내가 저들을 용서하듯 형제도 저들을 용서 해 주구려! 이 세상에서 용서하는 자만이 참 생명과 평화를 하나님으로 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라오!

알듯 모를듯한 그의 속삭임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영혼이 고개를 끄덕일 때 그가 외쳤다.

“다 이루었도다.”

살았다고 생각 했으나 죽은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외침이었다.

십자가의 사내가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며 그가 숨을 멈추자 침묵하던 하늘과 땅이 비로소 다시 소란스럽게 들뜨기 시작 했다.
비로소 나의 발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십자가를 메고 오르던 것보다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해골산을 내려왔다.

“이 세상에서 용서만이 참 생명과 평화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오!”

“사순절 – 구레네 시몬의 회상”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사순절보다는 먹고 사는 현실이 더 급했기에 누가복음 사순절 단상을 부활절에 맞추어 다 읽지 못하는군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매일 매일이 사순절이요 부활절이어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싶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무슨 특별새벽기도회, 특별부흥회, 주일성수 등등으로 특별한 이벤트에 촛점을 부각시킴으로 매일 매일의 소중함을 간과하게 하는 거짓 가르침이 교회안에 넘처 나지 않나 역으로 깨닫게 됩니다.

    마가(15:21)에 의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소개되었는데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문안인사를 하면서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로마서에 소개된 그 이름 “루포”는 십자가 행렬현장에 있다가 예수 대신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시몬을 기억나게 하고, 같은 사람이라고 서술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것으로 유추 해석하여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부터 한세대가 흐른뒤 시몬의 아들 루포와 그의 어머니(즉 시몬?의 아내)는 바울이 신앙의 어머니로 언급할 만큼 초기 기독교역사 속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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