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 고난

십자가와 사순절의 고난은 우리에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양옆에 2개의 다른 십자가가 있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시대 유대지방에 수많은 십자가가 있었다고 역사가 요세프스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십자가가 그 시대에 있었습니다. 사복음서를 통해 예수는 3~4시간정도를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고 추측되어 집니다.

십자가형이 무서운것은 손과 발이 못에 박히는 순간적 고통뿐만이 아니라, 죽기까지 때로는 며칠씩 걸리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만으로 따지면 예수의 죽음은 참으로 고통을 많이 당하지않은 다행스런? ( 하나님이 도우신 운이 좋은? ) 죽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박힌 손과 발의 못자국으로 피와 물을 다 쏟고 몇날을 무방비 상태로 뜨거운 태양과 밤의 추위속에서 서서히 죽던지 새와 까마귀떼에게 시달리기 때문에 숨이 끊어지기 까지는 아주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되는데, 불행중 다행이라고까지 할수 있다는거죠. (고난, 혹은 고통의뜻을 헤아리려다보니, 말이 이상하게 흘렀읍니다만은 –)

이맘때면 거의한번쯤은 먹사들이 가롯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심문당하시면서 수치와 고난당하고, 예수의 지신 통나무십자가의 무게,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간 거리, 그리고 몇 번을 넘어졌고, 넘어질 때마다 피와 땀이 쏱아졌고, 채찍에 맞고, 고난당한 이야기를 장황히 물리학도처럼 늘어놓거나, 몇년전에 멜깁슨이 만든 영화 passion of the Christ 를 예를 들면서 얘기할 때면,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의 모습이 정말 처참하며, 안타까움과 죄송스런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한심한, 진짜 너무나 한심한 코메디 목사님 -> 사진좀 보소 ㅡ 아 진짜 한대 패고시ㅍㄹ! ), (저넘의 먹사가 예수의 고통이나 삶을 단 1%만 이해해도 저 따 구 짓거리는 못할것이다.)

그러나 한 가족의 가장이되어 세상을 살다보니 십자가만이 목사들의 설명처럼 정말 말로 다할수없는 고통인가요 ? 아니더군요!. 이민현장의 삶은 모두가 경험하고 있을거고, 얼마전 내가 아끼던분의 장례식때 “죽는게 무서운게 아니라 죽음으로가는 길이, 얼마나 더 살아서 암과 싸워야 하는가? 이게 무섭다.” 라고 했다더군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불치병과 싸우는 고통이, 3일후 부활을 예언하시고 그의 구속사역을 이루어가시는 십자가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크고, 오랜시간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자유에 대한 욕망이 뭔지도 모른체 살아가는 북한사람들이나, 인디언 포카혼타스나 대서양을 건너간 아프리카의 자유를 잃은 흑인 노예들의 고통은 얼마나 처절하며, 그 고난은 수 세대를 이어가지 않았읍니까?

혼자는 살 힘이없는 지체부자유 정신박아자녀를 타살했다는 어떤 어머니의 삶의고통과 자폐증엄마의 소원이 자기자식보다 딱 하루를 더 사는것이라고 하는 처절한 절규는 또 어떠한가요?

몇년간을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 늙으신 부모님이나 배우자를 돌보며 사시는분들의 고통이 예수의 몇일간의 고통보다 덜 할까요 ? 지금은 겨울이 끝나가지만 지난겨울 난방도없이 살아야 했던 수많은 서민들의 현실적 좌절과 고통은요? 단지 서너시간 동안의 십자가에서 고난받은 예수의 고난에 비하면 훨씬 더 괴롭고 잔인한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겠읍니다.

말로 다할수없는 고통이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장황히 늘어났군요.

예수 십자가의 고난과 피를 흘렸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합니까? 그것은 아닌것 같읍니다.

예수가 오래 살았거나, 평안히 돌아가셨거나 했으면 구속사역과 상관이 없어지는겁니까? 예수의 십자가는 그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려고 했던 그의 삶, 십자가와 고난속에 담긴 예수의 의지, 하나님이 인간의 삶에 상관하시고자하는 계획(비록 우리가 다 이해못해도)때문에, 그의 십자가는 그 시대의 수많은 또 다른 십자가와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고난”이 구별되게 하는게 아니라 그의 “삶”이 다른 수많은 십자가와 구별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뭔가 절제하고 싶습니까?

내가 또 다른 십자가를 짊으로써 다른 사람을 구원할수 없다면, 오늘날 교회가 강조하는 사순절의 고난은 거짓과 거룩으로 무장된 목사님들이 여러분을 죄의식에 같힌자되기 위한 포멧에 지나지 않다고봅니다.

사순절을 고난과 상관지어 이기간동안 자학(고난)을 통해 구별될려는 쪼다같은 짓꺼리는 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거져받은 예수의 은혜로 누구를 돕기 위하여 절제하고 그필요로 고난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예수가 뜻했던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일껍니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를 향한 고난의 샘플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십자가와 고난사건이 중요한게 아니라 뜻이 중요하다고봅니다.

그 뜻때문에 그의 죽음과 고난은 다른 모든 죽음과 다른 십자가 사건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거기서 여러분들은 예수가 당한 고난과 아픔을 생각하십니까?

그 고난과 아픔을 더욱 느끼고 싶으면 스스로 고난에 동참하는 자해의식이 아니라, 예수가 가야만했던 그의 삶과 이웃을 향한 나눔을 되새겨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삶과 분리된 십자가 고난의 강조는 위선이고 가짜입니다. (목사들의 평균 삶의 질을 보십시오.)

예수의 십자가와 그시대의 다른 수천개의 십자가의 다른점은 십자가를 통한 예수의 삶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하십니까?

거기에는 이미 예수가 없읍니다.

거져 텅 빈 허당일 뿐입니다.

거기에서 고난과 아픔을 되세기며 당신 스스로를 죄스럽게 생각하는자 되지말고 예수가 우리에게 전달하고자하는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가 뜻했던것은 그의 고난을 우리가 되세기는것이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거룩하다고 자칭하는 목사들이 바라는 대로 생각없이 이끌리어 죄인처럼 믿는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한 삶과 사랑에, 감격하는 기쁨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사순절에만 한정된 삶이 아닌 매일 매일의 삶이어야만 하는것도 당연할것이구요 !!!

우리의 고난스런 삶을 어여쁘하시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과 헌신에는 상관없이 지금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예수”임을 잊지 말고, 이 힘든 사순절기간에도 언제나 자유하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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