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한인교회-한석현목사-설교비평-Forgive-but-never-forget

오늘 설교비평은 본한인교회 한석현 목사(이하 한목사)가 8월 15일에 행한 Forgive but never forget – 용서는하되 결코 잊지 마라! 라는 제목으로, 특별히 광복절에 초점을 맞춘 설교를 대상으로한다.

한목사의 오늘 이 설교는, 담임선생이 병이 나서 대신 들어온 어떤 음악선생이,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 수업시간 한시간 동안 할 이야기는 별로 없고 해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뱉어버린, 그런 시간 때우기식의 초딩학교 수업시간 풍경의 이야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필자는 단언한다.

한목사가 왜 자꾸 “예배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일까? 참담할 뿐이다. 예배가 역사수업 시간인가? 한발짝 양보하여, 오늘은 특별한 날 광복절이기도 하거니와 인간은 어차피 사회, 역사와 문화속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그것 또한 하나님의 큰 테두리안에 있다 친다 하더라도, 한목사의 역사의식 혹은 역사인식은, 이 한편의 설교에 나타난 그의 주장만을 놓고 본다면, 빵점에 가깝다.

한목사는, 설교 후반부에서 스스로 말하기를, 18세에 이민 왔다고 했으니, 그도 한국의 중고교에서 역사를 배웠을 것이다. 그 때, 시험도 치루었을 것이다. 광복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라고 답을 쓸 수도 있다. 일본의 원폭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필자는 한번만 돌려 생각해보라고 주제넘게 권고하고 싶다. 원폭피해자 가운데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시민을 비롯 한목사 보다 더 출중한 믿음의 소유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사람들이 일평생을 원폭의 그림자 아래서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그사람들 앞에가서 “지금의 이상황이 하나님의 은혜요”라고 말할 수 있나, 필자는 한목사에게 묻는다. 죽지않고 살아 남은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또 하나는, 한목사의 사고의 편협과 안이한 사고방식이다. 자신의 주장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일제 36년 치욕의 역사의 원인 제공자는 대부분 위정자들과 국제정세에게만 국한하는 신문기사를 빌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 아니고 서울대학교수 이야기이다, 나한테 뭐라 하지마라”는 식의 손 안대고 코를 풀겠다는 심산이, 교묘한 자기방어벽이 필자의 눈에 확연히 보인다.

한목사 자신의 주장이 아니니 필자가 여기서 이러쿵 저러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목사는 모든 화살을 위정자(들)과 국제정세로만 호도하고 있으니. 필자도 인정한다. 그것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으니까. 틀렸는지 안틀렸는지 필자는 거기까지 갈 체력이 않됨이 서글프다.

수년전에 한 때 평양의 장대현 대 부흥 100주년 기념 어쩌고 저쩌고 하여 온통 백화점 바겐쎄일을 방불케하는 하나님 장사를 교계에서 떠든 적이 있음을 필자도 알거니와 어지간한 성도들은 알것이다.

그때가 1907년이었다. 을사보호조약이 1910년이었다. 대부흥 때 받은 은혜가 3년도 못가 고갈되어 나라가 통째로 넘어가도록 기독교는, 특히 신학문 책좀 읽었다고 하는 목사들은 가만히 강건너 불타는 먼산만 바라보았나?

그래 어쩔 수 없었다 치자. 그러고 그냥 말았는가? 그대들이 말하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다 라는 제 1계명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일제의 신사에 절하지는 않았는가? 그것도 예배시간에.

김활란이라는 여자는 이화여학교 선생으로 있으면서 일제의 징병을 찬양 독려한 기사를 쓴적이 있음을, 그녀가 기독교도이고 그녀가 지은 찬송가 가사가 버젓이 지금의 여러분과 필자가 가슴 한켠에 끼고있는 찬송가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을 알기는 아나?

필자는 이러한 기독교도들의 친일 배교행위 그자체를 논하려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 이미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한목사는 왜 남의 탓이 주논조인 기사만을 들이 대면서도 우리눈(기독교도의 눈)에 든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인지 아예 안보는 것인지, 알면서도 교인의 비위를 건들고 싶지 않아서 혹은 시쳇말로 쪽팔려서 안하는지, 그것을 필자는 말하고자 한다.

필자는 묻는다. 신사 참배, 별거 아니다, 주일날 예배시간에 신사를 향해 묵도하고 주일 예배를 하면된다. 뭐가 잘못 되었나? 다들 그렇게 자기식으로 생각했다. 신사는 바알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마저 다르지 않은가?

그렇게 아전인수에 능했던 교계의 인물들이 훗날 광복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간 성도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을 교회문 밖에 세워두고 문전 박대해버린다. 참으로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광복절, 이런 아픈 과거의 일들을, 교회가면 허벌나게 듣는 말 – 회개 – 해야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민족에게 칼을 들이대고 민족을 감옥으로, 만주 벌판으로 내몰고, 일제의 개가 되어 일조한 기독교도가, 그의 후예들이 너무도 당연히 해야할 일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필자의 생각은 잠시 접고, 한목사의 설교로 가보자.

동영상을 띄우고 1-2분이 흘러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요즈음 말로 엽기적인 장면을 담은 흑백 사진들이 처절하게 흘러만 간다. 필자는 이장면을 보면서, 오늘 한목사가 정한 본문 말씀 시편 137편을 다시금 읽는 것으로 애써 화면을 외면 했다.

너무나 참혹하기에.그렇게 10여분간 일제의 잔혹함을 명백히 보여주는 사진들이 지나, 한목사는 유대인이 독일 히틀러에게 당한 예화를 들면서 예루살렘의 전쟁 기념관 앞에 설치한 동판의 한 구절인 “야드바심”을 끄집어 내어, 오늘의 설교 제목을 정한 이유라면 이유랄까 설명해낸다. “야드바심” – 한목사의 설명에 의하면 Forgive but Never Forget – 용서는하되 결코 잊지 마라! 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한목사는, Fish Head – 필자의 번역으로는 “붕어 머리” – 의 지능 수준의 사람들이 리더로 있는 국가가 그런 끔찍한 역사를는 반복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멀리 떠나 이민와서 살지만, 기억하고 살아야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잊지말아야할 네가지 아이템을 설명했다.

한 목사는, 첫번째로, 그러한 끔찍한 역사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고 불과 수십년전 우리땅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genocide(인종학살)가 자행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항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자녀들에게 올바른 교육도 중요하므로, 본한인교회 교역자들에게 유소년 교육을 강조했다고 한목사는 자신이 어떤 회사의 CEO로 착각하고 있음을 은연중 들어낸다.

필자가 보기에, 한목사의 현실 인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한목사는 주주 총회에서 대표이사가 주주들을 향해 “내가 이러 이러 한 일을 부교역자들에게 주지시켜 주주 여러분의 자녀들의 역사인식을 고양시켰습니다” 라고 보고를 하고는 있는 모양새이지만, 그의 말투에서 CEO의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필자만이 느끼는 것일까. 좋다 그까이꺼,, 그런 지엽적인 것에 너무 몰두할 필요가 있겠나, 설교 내용만 충실하다면야 더 들어보고 나중에 포스팅 하기전에 이 부분은 잘라 내 버리리라 라고 마음 먹었다.

한 목사는 계속해서, 설교 준비를 하던 중에, 경향신문에서 읽었던 기사를 예를 들어, 왜 한국민이 일제 36년의 식민지가 되었는가에 대한 원인을 기사를 작성한 서울대교수의 주장을 빌어 제시했다. 아직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서도, 몇가지를 꼽는다면, 고종의 타자의존적인 무능과 겁장이 성격과 각료들의 일신상의 욕심, 당시 전 세계를 휩쓸던 제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어 정한론에 이르렀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한반도를 일본에 내주었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이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는 등등의 신문기사이야기에서 읽은 두번째 원인을 제시했다.

세번째로는 조국 근대화를 지연시킨 조선의 리더들이다라고 한목사는 서울대학교수가 쓴 그 기사를 들어 말한다. 한목사는 잠시 논점을 바꾸어, 자녀들에게 이러한 힘의 역사를 분명히 교육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역사는 개인에게나 민족에게나 21세기 22세기에 언제든지 반복되어질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목사는 예의 조용하던 억양을 한껏 끌어 올려 말했다.

한 목사는, 3-4년전에 있었던 정신대 문제에 관련하여 캐나다 의회에서의 결의문을 작성하는 일에 한국 교민을 대표하여 일한 적이 있음을 말했다. 여기서, 참으로 기괴한 자화자찬이 한목사 입에서 흘러나온다.

“(제가) 영어가 되니까 이 일을 감당해달라는 이민사회 교계 교역자들의 부탁을 받아 들였다, 캐나다 국회로 하여금 일본에 대하여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 시키게 했다”

고 말함으로서 필자를 아연실색케 하고만다.

이 일을 하면서 알게된 것은 캐나다의 역사교육 현장에는, 서양사가 주교재이고 아시아권 역사로는 모택동 공산혁명 정도만 소개될 뿐 일본의 2차대전 만행이 학생들에게 가르쳐지지 않는다고 한목사는 말했다. 그결과로서 중국 코뮤니티와 협조하여 이곳 교사들을 한국과 중국에 파견 현장 학습과 같은 일을 한다고 한목사는 말했다.

필자는, 한목사 자신도 자긍심을 갖는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해놓고 딱 한마디에 모든 것을 다 망쳐버리는 말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이 바닥에서 영어 안되는 교역자는 그런 일에 열정은 있다하더라도 영어가 안되면 어렵다는 역설,,, 이대목에서 왜 이런 말씀이 떠오를까? “사람을 외모로만 취하지 마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두번째로 광복의 기쁨은 희생의 댓가임을 기억해야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이름없이 자결로서 독립을 위해 희생했다. 또하나의 극적인 예화를 든다. 김용환이라는 사람이 도박을 빙자하여 돈을 빼돌려 만주의 독립군에 자금조달했음을 한목사는 말했다. 자신의 무남독녀 외동딸의 혼수비용마저마도 도박판에 쏟아부어 일경의 눈을 속여 독립군에게 송금했다는 일을, 그녀가 쓴 훗날 쓴 서간문을 낭송하여 감동을 자아내려했다.

이런 희생끝에 찾아온 광복, 이런 광복을 생각하면 한국기독교가 참으로 자랑스럽다고 한목사는 말한다. 독립선언 33인중에 절반 16명이 기독교도, 남강 이승훈의 독립운동에 기독교도가 참가한 이유를 한목사는 전했다. 남강에 의하면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지배하에 놓인 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라고 한목사는 말하면서 독립운동은 신앙이다라고 까지 한껏 끌어 올린다.

세번째는 아직 광복의 노래를 부를 때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이 때서야 비로서 설교의 종착역쯤에 와서 오늘의 본문 시편137편의 배경을 설명한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 귀족이 수로공사장에서 잠시 휴식을 하는 동안 그에게 바벨론 사람이 너희 유대 고향 노래 한번 불러 보라는 청을 들은 유대인 포로의 복받치는 바벨론 저주의 시가 바로 오늘 본문임을 한목사는 설명했다.

그는 권고하기를 우리민족이 바로 이러한 심정으로 살아야 할 때이다라고 주장한다. 광복에 이르게한 선열들이 지금 우리민족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작태를 보면서 는물을 흘릴 것이다라고 한목사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남북 분단은 올바로 하나님 앞에서지 못한 우리 민족의 잘못도 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의 침략에서 출발한 아직은 청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의 역사다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때이다, 아직 광복의 노래를 부를 때가 아니다, 라고 자신의 생각을 한목사는 말한다.

네번째, (광복은) 우리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계속해서 한목사는 “독립은, 물론 많은 투사들의 희생에 따른 것이지만, 우리의 힘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여러분 잘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일본이 더 망령된 꿈을 꾸게 했다, 아시아를 제패한 후 미국 진주만을 공격했다, 이것에 대해 후대의 일본 역사학자들은 진주만 공격의 이유를 모른다고 말하는데, 나(한목사)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원자탄 두개를 떨어뜨린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이 끝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자 은혜이다, 물론 원폭피해 당사자들에게는 긍휼한 마음을 갖는다, 정말 은혜였기 때문에……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언론인 언론인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해외동포는 동포대로 천국시민으로 책임감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리하여 100년 치욕의 역사를 청산해야하겠다” 이쯤되면, 필자는 참담함을 넘어서서 절망한다.

어떻게 이런 말이 목사의 입에서 예배시간에 선포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성직자는 성직자대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음이 필자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한목사는 부끄러웠는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필자는 넘겨 짚었다. 혹은, 성직자는 성직자대로 잘 살고 있었다라고 한목사는 가정하고 있었을까?

편안한 나라에서 편안한 삶을 살기 때문에 잊지말고 민족의 쓰라린 경험 민족이 처한 현실을 자녀들에게 잘 교육해야겠는 다짐을 하면서 한목사는 설교를 끝냈다.

한목사의 오늘 설교를 들어보면, 후세대에 대한 지극한 염려가 은연중에 깔려 있음을 필자는 알아차렸다. 그러한 치욕의 역사에 대한 것들은 잊으면 안된다고 부교역자들에게 아이들 교육을 특별 당부는 했을 지언정, 교회의 예배에 일본의 신이 떠-억 하니 자리 잡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다. 어른으로서 어린 것들에 대한 대단히 부끄럽고 졸렬한 처사이다.

용서해라 그러나 결코 잊지마라! Forgive but never forget!

아니 잘못한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용서를 어떻게 하나? 한목사 자신이 이미 정신대 문제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일에 앞장 섰는데도 그 쪽에서는 그런일 없다고, 정신대 모집 한적 없다고, 우리의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간 것이라고 생떼를 쓰는데, 무엇을 어떻게 용서하나?

이 모든 필자의 생각은, 한목사가 성경 텍스트에 천착하는 설교를 했다면, 없었을 것이다. 설령, 특별한 날의 특별한 설교라 하더라도, 균형감을 유지했더라면, 아프고 부끄럽지만 진실을 진실대로 후세대에게 말해야 한다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격하지는 않았었을 것이다.

한목사가 오늘 설교에서 주문한 후세대에 대한 교육을 열심히 하면, 기독교 신사참배 항목은 일제 36년 오욕의 역사 사건 리스트에서 훗날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망상에서 목사들이 속히 빠져 나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그리스도의 말이다.

“본한인교회-한석현목사-설교비평-Forgive-but-never-forget”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이 댓글은 이글의 대상인 한목사와 모든 목사들에게 동일하게 해당하는 말이다.
    목사님들아,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교인이 교회에 나가는 첫번째 이유가 바로 “성경말씀” 들으러 가는 것이라오. 김치냄새 풀풀날리는 목사 영어실력 확인하려 가는것이 아니고요.
    이말을 오해하지 마시기를, 원어민이 보기에 한국사람 영어는 어차피 accent가 있다는 것을 약간 비틀어 표현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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