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행전 – 들어가는 말

오랫만에 여는 바보스쿨구역예배 바울행전 이란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바울행전 – 바울서신에 나타난 행적

초창기 예수운동을 극렬히 탄압한  바리새파 사람이었던 바울,

예수추종자들을 잡아 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레이져광선 쏘인 후에 예수의 추종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누가는 사도행전 9장에 기록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입을 통해 나오는 “바울의 진술”은, 어디까지나 사도행전 저자의 기록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 즉 누가 라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그러한 주장에 특별히 토를 단 목사 혹은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누가복음을 누가가 썼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그렇다고, 누가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사도행전에서 언급되는 바울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때,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조간신문을 읽어 이해할 수준의 독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의를 기울이게 마련이다.

나는 몇편의 글을 통해, 다메섹사건 이후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에 관한 나의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고자한다.

사도행전에는 총 5번의 예루살렘 방문이 언급된다. 그러나, 바울의 진본서신에는 세번이다.

누구를 더 신뢰해야 하나 ?

당사자가 직접 쓴 기록인가, 아니면 (옆에서 직접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 보고 들은 누가복음의 저자(들)의 기록인가 ? 그것도 30년도 훨씬 지난 후에 기록된 누가복음인데…

누가복음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르게 진술함을 발견한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레이져광선에 허우적거릴 때의 상황 묘사가 사도행전의 두군데 나오는데, 서로 다르다.

왜 다를까 ? 같은 사건에 대해 왜 다르게 진술할까 ? 바보스쿨 “바보들의 이야기” 게시판에서, 이에 대해 이미 갈파한 글이 있다.

필자는, 누가의 공동체 내부에 몇사람이 누가복음을 기록했고, 그들의 소통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추론한다.

그렇게 이해하면, 뭔가 이해하지 못한 채 읽어 가면서 “계속 읽어가야 하나 ?!” 하는 찝찝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가의 저자 혹은 저자들의 디테일한 상황묘사 혹은 바울에 관해 전하는 행적이라던가 그가 한 말에 대해서는 성경의 다른 부분을 읽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울이 세번 갔는가 다섯번 갔는가 이게 뭐 그리 중요한가 ?

이런 식이라면, 뭐하러 그 두꺼운 성경끼고 다니나 ? 간추린 복음서, 바울서신 요약, 간추린 대선지서, 구약역사기 완전정복,,,, 이런 것들이면 충분치 않나 ?

잊지 말자,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 – 성경,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 – 성경, 경전이다. 만화책이 아니다.

바울이 움직인 동선과 시기, 그리고 그가 직접 쓴 서신, 많지도 않다. 데(살전) 고(전) 빌(레몬) 빌(립보) 갈(라디아) 고(후) 로(마서) ,,, 7권이다. 외우자.

데 고 빌 빌 갈 고 로 – 바울행전

순서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인정하는 기록된 시기를 기준으로 한 거다. 왜 에베소서는 빼버렸소까 ? 묻지 마소. 알고 싶으면 찾아서 공부하심이.

데고빌빌갈고로 를 읽다보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왜 했나, 가만 있어봐 어딘가에 비슷한 말이 또 있었는데 그거하고 이건 무슨 관련이 있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편지 저 편지에 기록된 것들을 시기와 장소에 따라 가지런히 한 곳에 놓아보면, 그러한 의문에 대해 의외로 쉽게 답을 낼 수 있다.

***

어떤 목사가 인용한 통계를 필자가 다시 인용하면,

성경을 (매일?) 읽는 개신교 교인은 전체 교인의 3%가 안된다

성경을 아주 쬐끔 더 파고든 필자 같은 사람이 뭔 말을 할 때, 그 말이 귀에 거슬리면 되려, 목사가 허구헌날 줏어섬기는 알량한 몇마디로 가르치려 대드는 사람들이 97% 가 넘든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기적같은 수 많은 이야기, 왜 바울 서신에는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을까 ?

조간신문을 읽어 이해할 수준의 독해력 소유자라면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4복음서를 다 읽고 난 후, 신약 유일의 역사서 사도행전을 거쳐 끝까지 가도록 예수 기적 같은 이야기는 찾아 보기 힘들다. 오로지 십자가 부활 빼고는.

놀랍게도, 바울의 서신서가 시중에 나 돌기 시작할 때는, 4복음서는 세상에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에 관한 논제는, 우리 같은 평신도들의 이해의 한계를 넘는다. 

사도행전 누가의 진술과 “데고빌빌갈고로” 에 바울 자신이 직접 기록한 진술로 부터 우리는 그의 행적을 추적할 수는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울, 마르고 닳도록 들어 머리에 새겨 넣은 그에 관한 이야기들,

글쎄 그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그가 쓴 서신에서 마주 할 때, 과연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우리의 마음은 열려 있을까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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