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교회-노승환목사-설교비평-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오랫만에 밀알교회의 노승환목사(이하 노목사)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라는 제목으로 2010년 12월12일자로 밀알교회 웹사이트에 포스팅된 설교를 비평 대상으로 한다.

그가 선택한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14장 15-21절에 기록된 유명한 다섯개의 빵과 두마리 생선찜 혹은 생선구이이야기이다. 필자의 생각에, 갈릴리바다는 바다가 아니고 호수 즉 민물이고 그곳에서 잡히는 고기는 당연히 민물고기이고 그것은 날것으로 도시락에 들고 다니기엔 고약했을 것이다.

갈릴리 호수에서 주로 많이 잡혀 상품성을 갖고 잘 팔리던 고기가 이름하여 “베드로 고기”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붕어와 거의 흡사하고 그 크기도 6-9치정도의 그리 크지않은 그냥 흔히 볼수있는 조기 정도의 크기이다. 그것은 냄새도 나고 쉽게 상하기도 하거니와, 도시락에 넣어서 날것으로 먹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찜 혹은 구이였을 것이라고 필자는 추측한다.

사족으로 필자가 처음 천자문에 입문하기 전에는 “다섯개 떡 물고기 두마리”였었다. 어느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다섯개 떡 물고기 두마리”라는 우리 말을 애써 오병이어라는 한자어로 표현했는데 우리 말이 더 나은 것 같다. 뭐 잘났다고 목사가 그것을 한자로 번역(?)까지 해서 오병이어라고 자신의 한자지식을 – 알고 보면 그 사람들 거의 모두가 형편없는 국어생활자들이었건만 – 내세우나? 아래 적어놓은 성경에도 그렇게 쓰여있는데, 이런 빈정거림도 솔직히 있었음을 고백해야만 한다.

어디까지나 오늘 설교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족임을 밝혀둔다.

오늘 설교의 본문 말씀 – 마 14:15-21

15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As evening approached, the disciples came to him and said, “This is a remote place, and it’s already getting late. Send the crowds away, so they can go to the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 food.”

16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Jesus replied, “They do not need to go away.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17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We have here only five loaves of bread and two fish,” they answered.

18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Bring them here to me,” he said.

19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And he directed the people to sit down on the grass. Taking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 heaven, he gave thanks and broke the loaves. Then he gave them to the disciples, and the disciples gave them to the people.

20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and the disciples picked up twelve basketfuls of broken pieces that were left over.

21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The number of those who ate was about five thousand men, besides women and children.

노목사는 오늘 설교의 첫마디를 장일순이라는 사람의 예화로서 시작했다. 필자가 세상견문지식이 짧아 장일순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노목사가 전하는 대로 필자의 머리속에 그대로 박혀버린다. 장일순이라는 사람은 사회운동가 교육자 농민운동가 무위자연주의자로서, 그가 저술한 노자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고 노목사는 말한다.

장일순이라는 사람이 주장하기를, 오병이어는 예수가 거기 모인 군중들을 감동시켜 지갑을 열게하여 나눠 먹은 것으로 이해했고 그래서 성경이 믿어지게 되었단다.

또한 지금의 정진석추기경의 이 사건에 대한 신문기자와의 대담을 노목사는 끌어들였다. 정추기경의 “물고기 떡이 하나씩 하나씩 불어 났다는 이야기는 없다, 예수께서 올리신 기도를 듣고 감동한 사람들이 낯선 사람들을 향해 품속 숨겨둔 도시락을 꺼낸 것이다” 라는 류의, 장일순의 그것과 같은, 그러한 성서해석을, 한국 최고지위의 천주교 신부의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이라고 노목사는 결론적으로 (비판적인 속내를 보이며) 단언한다.

필자는 이러한 노목사의 성급함내지는 거두절미한 채 단 한마디만을 끄집어 내는 단세포적인 사고구조에 또한번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정추기경이 어떠한 맥락에서, 어떠한 자리에서 누구를 향해 무슨 목적으로 어떠한 말 끝에, 즉 그 이야기의 전후사정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은 채, 머리에 별로 들은 것이 없어 보이는 노목사가 난도질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는,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가 노목사의 말을 듣는다면 정추기경의 주장을 긍정도 부정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한 이야기 이외에 정추기경이 당시에 처한 상황 전후사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장일순이라는 사람을 평할 때도, 그가 접한 것이라고는 위키(Wiki)백과 웹페이지와 책한권이라고 노목사 스스로가 말했다.

이미 위키(Wiki)라는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그 신뢰성에 심각한 물음이 있어 왔음을 컴퓨터좀 만진다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노목사는 불행하게도 인지하고 있지 못함을, 즉 “스스로 나 무식하요” 고백하고 있다. “교인여러분은 잘 모르시는데요 위키라는 인터넷이 있어요 거기에 이렇게 쓰여있어요” 라는 은근한 자만감 – 인터넷을 능숙하게 쓰지 못하는 우리네 나이 많은 여자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을 깔보듯이 윽박지르는 자만감 내지는 폭력이 필자의 눈에 확연히 드러난다.

자신이 무슨 굉장한 지식을 거기서 얻은 양 설교시간에 드러내고 있으니 필자는 참으로 어이가 없다.

국민학교 학생들도 만들고 붙이고 고치고 빼고할 수 있는 것이 위키백과이다. 위키라는 것은 “봄에 우리집 잔디 병충해(grub)를 어떻게 때려잡나?” “집에 뱀이 들어왔다 어떻게 내쫓을까?” 이런 류의 질문과 답을 내는 정도의 그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서 사람의 정신세계에 관한 것을 끄집어 내어 이러쿵 저러쿵하여 설교시간에 떠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신뢰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정말로 하고 싶으면 사석에서 하면되는 그 정도의 것이다. 역시 엊저녁 잠시 끄적인 설교준비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그러면서, 그러한 성서해석은 너무도 인본주의적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고 노목사가 말할 때, 지금 노목사가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를 촬영하고 있고, 그리고 그것은 “웃음”을 주기에 너무도 훌륭한 퍼퍼먼스로 필자에게 다가왔다. 필자가 미쳐 보지 못한 곳에서 인본주의가 아닌 하나님 중심적인 설교를 많이 했는지 모르겠으나 필자가 본 이전의 몇편 설교만을 기초로 추측컨대, 해보지도 않고 해볼 능력도 없어 보이고 하나님 중심적인 설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노목사가 인본주의를 논하다니,, 그야말로 개그콘서트의 한장면임에 틀림없다.

그의 설교를 듣다보면, 그 자신이 이미 하나님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있는 인본주의 설교를 하고 있으면서 정진석추기경의 말이 인본주의 말이라고 하니,,,,,, 필자는 크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필자가 정진석추기경을 두둔하는 말은 결코 아니외다.)

계속해서 노목사의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로 가보자. 노목사는 오병이어 기적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들을 무우 자르듯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정진석 추기경의 오병이어에 관한 신년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서 정추기경이 언급한 “예수의 설교에 감동된 청중들이 숨겨둔 도시락을 꺼낸 사건이다” 라는 주장에 노목사는 동의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한때는 그런 류의 성서해석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노목사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은근히 자신을 그들과 격리시키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러기에는 노목사의 살아온 인생역정과 목사로서의 경륜과 독서량과 성서해석능력이 현저히 함량미달이다라는 것이 필자가 몇편의 설교로 얻은 주제넘은 결론이다.

노목사가 앞뒷 말 다 잘라낸 채 한마디만 끄집어 내어 정추기경에 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면 필자의 노목사에 대한 그것은 안된다라는 법은 찾기 어렵다.

필자는, 노목사가 자신의 학창시절이야기를 오늘 설교 후반에서 귀뜸해주었는데, 그가 그시절 부모가 사준 스포츠카를 운전하며 다녔다는 노목사, 그가 과연 배고프고 단돈 몇 백불이 없어 학교를 쉬고 직업전선을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인물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홀애비 심정은 과부가 안다고, 과부의 심정이 되어 보았느냐는 말이다. 세상 말에도,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기 전에 인생을 말하지 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가 그렇게 단언하게된 여러가지 해석이라는 것도 정상적인 사고구조를 가진 기독교도라면 쉽사리 동조할 수 없는 주장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목사는 그러한 주장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내세운다. 이사건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 주장들을 부정해버린 노목사의 행위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하는 것은 노목사 스스로 성경에서 끄집어 낸다. 도대체 앞뒤가 안맞는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오병이어 사건은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고 그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다르다 라고 노목사 스스로 말을 한다. 성경의 기자들도 사건을 제각각 약간씩이나마 다르게 보는데,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야 벼라별 해석이 나올 터인데, 그것을 거두절미하고 모조리 부정하는 노목사, 참 대단한 설교가이다.

지난번 비평 대상이었던 “교회의 본질”이라는 설교에서는 교회는 성도들이 연합하는 곳이다, 사회구제로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센터이다라는 등등 거의 궤변에 가까운 말을 마구 뱉어냈음을 일전의 설교비평에서 필자는 이미 갈파한 적이 있다.

오병이어 사건이 예수의 능력 드러냄에 있지 않다고 노목사는 단언한다. 다섯개 떡과 두마리 생선으로 어떻게 5천명을 먹일 수 있는가 노목사는 반문한다.

“누가복음에는 남자만 5천명이라고 쓰여있든데 어떤이는 만명이다라고…” 노목사는 지나가듯이 오늘 선택한 설교 본문의 다른 복음서에 즉 누가복음에 쓰여있다고 사족을 달았는데, 위에 필자가 옮겨적은 마태복음에도 남자들이 5천명이라고 한글에는 안나와 있지만 영어로 보면 그렇게 나와있는데 노목사의 젖비린내 물씬 풍기는 성경읽기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사실 마태복음의 한글도 “남자”라고 명시는 안해서 그렇지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에서 보듯이 여자 빼고 사내어린이 계집어린이 빼면 남자밖에 더 남나? 노목사는 누가복음에만 남자가 5천명이라고 명시했다고 말했는데 그리하여 마태복음에는 “남자”라는 표현이 없음을, 그래서 이설교를 위해 누가복음도 읽었다라고 자랑하는데, 미안하지만 마태복음도 똑 같다.

“남자”라는 말만 안들어가 있을 뿐 일원일차 방정식(사람 – 여자 – 남자여자어린이 = y 라는 일차방정식에서 y의 값은 남자가 됩니다 노승환 목싼님!!)이면 족한 것을, 노목사 성경좀 제대로 정신 또 바로 차리고 읽어야 하긋다.

노목사 당신이 그저 읽고 은혜받는다면 누가 뭐라나, 그러나 그것을 읽고 다른 사람앞에서 주일 설교를 할라치면 진짜 공들여 읽어야 할 것이다. 목사노릇을 하려면 해석은 관두고서라도 성경을 문자적으로라도 제대로 이해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참, 이런 사람이 하는 설교를 비평한답시고 껍죽대는 필자역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

어설픈 성경읽기를 보이는 노목사는 오병이어의 중요한 핵심을 두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예수께서 누구이고 메시야로서 사역의 본질을 예표하는 사건이기에 중요하고 – 그러니까 성경에는 덜 중요한 사건도 있다는 말이냐 – 두번째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과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기때문에 중요하다고 노목사는 간결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필자는 노목사에게 묻는다. 교회를 예수가 만들었나? 노목사는 놀라지 마시라. 예수께서 교회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가의 예표이다, 이러한 주장은 목사로서 가능할 지는 모르지만 글쎄 듣는 우리는 억지춘향으로 밖에는.

예수의 입에서는 단한마디도 없었던 교회, 그 교회 모습이 어떠해야한다, 그것도 예표란다, 필자는 노목사의 이러한 쉰소리에(요즈음 젊은애들 표현을 빌면 물만두 옆구리 터지는 소리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wordprocessor 님의 지적에 따라 주석 처리 Sep 7, 2011 by 순두게: 떡 다섯개 물고기 두마리, 예수 제자는 12명 예수가 하나씩 나누어 줘도 다섯 제자는 빈손이다 라고 노목사는 자세히 풀어나가는 시늉을 하지만, 마가의 진술은 어찌 설명하시려나, 필자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마가는 떡 7개 그리고 물고기 두어마리로 진술하고 있음을 필자는 확인했다. 한글의 마가복음이 좀 이상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두어마리는 대개 a couple of 라고 쓰는데 영어성경에는 a few 로되어있다. 아마 너댓마리일지도 모른다. 암튼 필자의 짧은 영어라 뭐라 딱 꼬집을 수 없음을…… 다시한번 필자가, 노목사의 설명을 그대로 한번 옮겨보겠다. 지금 예수의 손에는 떡 다섯개 그리고 물고기 두마리 총 7개의 분리된 식료품이 쥐어져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씩 다 나누어 줬다. 8번째 제자 부터 12번째 제자까지는 더이상 못받아야 할 터인데 기적이 일어나서 다시 한덩어리씩 받았다. 이제 그 제자들이 군중 속으로 들어 가서 나누어 주는데 같은 현상이 일어 났다. wordprocessor 님의 지적에 따라 주석 처리 Sep 7, 2011 by 순두게: 이것이 노목사의 기적현상에 대한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이다. 이렇듯 기적사건을 현장에서 몸소 목격한 것 처럼 설명하는 노목사, 떡 7개와 두어마리의 물고기라고 진술하는 마가의 기록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래서 설교시간에 청중이 질문을 해야만 한다. 노목사는 완벽한 사기극을 돈받고 밀알교회 병신도들을 모아놓고 펼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이는 아니 다섯개니 일곱개니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요?? 라고 반문하실 것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은, 성경은 무오하고 완벽하다는 기독교 보수꼴통들의 주장을 들이대기 보다는, 성경은 만화책이 아니다, 경전이다 라는 사실임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필자의 생각에 기적은 그냥 기적인 것이다. 4백만 달러짜리 복권이나 5천만 달러짜리 복권이나 우리같은 필부들에게는 그 차이가 별로 없는 당첨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적이기 때문이다.

노목사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배고픈 군중들 보다는 그 것을 나누어 주는 제자들의 특권에 더 관심이 많음을, 그리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당신들도 그 특권을 누려라 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제자그룹이다, 그러니 이 제자그룹 처럼 사역에 참여해라…… 그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배고픈 사람들일텐데,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이 기적을 일으키게 하기 위해 이 사건을 예수가 일으켰다, 필자는 또한번 웃을 수 밖에.

또한, 오병이어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많은 견해에 대해서 노목사는 사건의 의미의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며 자의적으로 무우자르듯이 닫아버렸다. 즉, 다른 의견에 대해 “그런 해석은 틀렸다”라고 자의적으로 노목사는 단언했다. 참으로 위험한 논법 전개이다.

지금 이설교시간에 어떤 의견이 옳고 그르고, 즉 옳은 주장을 가려내는 시간이란 말인가? 노목사가 하나님 같아 보인다 필자에게는. 예수가 우리를 사용하여 사역을 하지 않고 예수 혼자 스스로 사역했으면 벌써 세계 복음화는 끝났다, 하나님의 목표는 세계 복음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놀라우신 사역에 우리를 끼게끔 해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또 봉사와 헌신을 노목사는 이끌어 낸다.

그러면서, 자신은 행복을 목표로 목사가 된것은 아니지만 목사로서 참 행복하단다. 모처럼 노목사가 바른 말 했다. 1000여명이 넘는 병신도들이 그 앞에서 옷매무새 만지작거리며 두손 공손히 머리숙여 한발자욱 뗄 때마다 “목싸아안님” “목싸아안님” “목싸아안님” 위해 바치면서 수만달러씩 앵겨주는데, 오늘 같은 개구라 설교로 시간만 죽이며 목사질 하는 누군들 행복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단언한다.

필자가 추측하기에 노목사의 교회는 누구도 예외없이 떼부자들만 다니는 교회임에 틀림없다. 노목사는 이번에는, 헌신과 봉사는 중독성이 있어서 세상 그어느것과도 비교가 않된다며, 자신의 전도사시절 어린 아이들에게 차량편의를 제공한일과 찬양사역에 대한 말을 하면서, 그런데 끼워주시는일에 너무 감사했다고 말하면서 교회가 무임금 노동력 착취하는데 대한 죄책감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스스로 목사가 아님을 부정하는 노목사, (should have been taken out before posted, by syntiche 7 Apr) 세상이 주는 쾌락을 대신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얼쩡거리는 철부지,,,,,,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마음은 노목사에게 찾을 수 가 없다.

그가 말하는 봉사 헌신 역시 교회의 원활한 운영과 교회 이름과 자신의 이름 뽐내기 그거 말고 또 뭐가 있는가, 필자는 아멘약에 완전 중독되어 똥을 된장으로 알고 퍼 먹는 밀알교회 교인들이 너무도 처량하게 보일 뿐이다.

이런 교인들이 목사를 먹사로 만들어 완전한 파멸로 이끌어 가고야 마는 완만한 인격타살행위자들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윽고, 노목사는 자신이 대학시절 부모님이 사준 빨간색 미스비씨 스포츠카에 걸프렌드를 태우고 다녔는데 교회 아이들에게 차량 편의를 제공하기 불편해서 어머니가 타고 다니던 차를 탔다고, 그래서 엄청 큰 희생을 했다, 누가 시켜서 했냐, 아니다 특권이기 때문에 했다, 그러면서 얻어지는 만족과 기쁨과 행복이 세상의 그 어떤것과도 비교가 안되더라, 라고 노목사는 그야말로 허심탄회하게 말을 했다. 필자 더 이상 할 말 없음다.

이후로 교회 행사에 대한 이야기로 나머지 시간을 때우고 오늘 설교를 마쳤다. 노목사는 세상 쾌락을 놓기 위해, 즉 자신의 목적을 위해 봉사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그 스스로 진술하고 있음을 보노라니, 필자는 다시한번 신비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노목사는 잃어버린 한마리 양에 대해서는, 뒤통수 긁적이며 돌아서 간 부자청년에 대해서는 어떠한 생각을 하고 살아 갈까?? 노목사의 머리로는 그 사건의 해석 방법에 대해서나 혹은 고작 헌신 봉사이야기나 할 수 밖에는 없는 너무도 짧은 한계를 어쩔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 거룩 덩어리 기적덩어리 산상수훈의 형이상학 덩어리 이런 모든 것들도 결국은 배고픔이라는 현안문제에 부딪힌 우리같은 병신도들에게는 밥보다 더 우선일수가 없음을 간파한 예수가 현안문제를 해결해 주신 사건이다. 배고픔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예수는 그마저도 간과하지 않으셨다는 필자의 말이다.

노목사의 머리 속에는 병고치고 물위를 걸어가고 구름타고 오시고 하는 그런 도깨비 방망이 예수의 모습이 들어 있음을 필자는 알아차렸다.

지나가던 배고픈 행인, 목 마른 여인에게 그들이 당면한 당장의 시시껍절한 현안문제도 예수는 간과하시지 않으셨다라는 정도의 메세지를 노목사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임을 필자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밀알교회-노승환목사-설교비평-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에 대한 2개의 댓글

  1. 그러네요,,, 말씀하신 대로 여러번 읽어 보았습니다. 명백한 제 잘못입니다. 님께서 주신 말씀은, 엄한 충고로 알아 듣겠습니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윗글에서 해당되는 부분만 주석처리 해버렸습니다. 그부분을 빼고 읽어도 노목사의 설교에 대한 비평으로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오직 그 사실 하나만을 끄집어 내려고 이글을 쓴 것은 아님을 혜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 주석된 부분을 뺀다 해서 노목사의 함량미달설교에 대한 비평이 갑자기 꽉찬설교의 예찬으로 둔갑해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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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국에 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이 사이트를 발견하고 글을 읽다가 남기게 되었습니다.
    본인도 이민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기성 한국 교회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하는 사람으로서 님의 글에 많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비판이 정당하려면 그 근거도 정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마가 복음에 나온 떡 7개 물고기 두마리 (7병 2어)의 사건은 8장에 나온 것으로 6장에 나온 5병2어의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시면 금방 아실수 있습니다.)
    그냥 짧게 적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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