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마19: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19장23-24절 본문)

부자는 누구입니까?
재물을 많이 가진 자입니다. 재물은 무엇입니까? 물질적인 것만을 말함이 아닙니다. 나에게 유익한 것만을 추구하는 탐심입니다.

정욕입니다. 온갖 죄악으로 부유한 그 마음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세리, 로마의 앞잡이들, 권력가들은 자신들의 재물을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자들이었습니다. 과연 이런 부자들이 백성들의 고통을 몰랐을까요? 구약의 말씀중에 가난한 자에게 하라는 법을 생략했고, 안식일을 지키려면 안식년 법을 지켜야했고, 안식년을 지키려면 희년의 법을 지켜야 하는데 그런 법은 생략하였기에 예수님은 부자들의 행위를 미워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낙타가 어떻게 그 바늘구멍으로 들어갈까요?
유목민들은 천막을 자주 바꿉니다. 바람에 찢기고 이웃 병사들에게 빼앗기고, 그렇기 때문에 자주 만듭니다. 그래서 그만큼 바늘과 실(絲)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마땅한 실(絲)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족장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각 족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약대(낙타) 한 마리씩을 선택하여, 전날 저녁에 잘 먹이고 나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그 생명도 끝이 났습니다.

유목민들은 큰 가마솥을 큰 아궁이에 올리고 그 속에 올리브기름을 3/1, 물을 3/1정도 넣고 300도 이상이 되는 열기로 펄펄 끓입니다. 그 솥 밑부분에는 아주 작은 바늘 구멍들이 20개 정도 있고, 그곳은 진흙으로 발라져 있으며 솥 주위는 1메타 정도의 도랑을 파서 차가운 물이 흐르게 합니다. 이렇게 준비가 다 끝났을 때에 그 낙타의 껍질은 벗겨서 천막을 만드는데 가죽으로 쓰이고, 몸체는 가마솥 속에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낙타가 가마솥에서 완전히 녹아 흔적도 없어질 때가지 뜨거운 열을 가합니다.

완전하게 녹아진 것을 확인하고 가마솥 밑에 있는 구멍을 막고 있는 진흙을 뜯어내면, 그 작은 구멍으로 하얀 실(絲) 같은 것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와 도랑에 준비되어 있는 물로 떨어져서 새림새림의 모양을 갖추고 사람들은 그 실(絲)이 식었다고 판단 되었을 때에 낙타를 녹여 만든 그 실(絲)을 타래에 감아서 천막을 기울 때에 그 실(絲)을 바늘귀에 넣어서 사용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다른 짐승을 다 보았지만 낙타처럼 질긴 실(絲)은 없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낙타는 바늘 귀로 쉽게 들어갔습니다.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녹아서 바늘귀로 유유히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너무도 어려운 길입니다. 첫째는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인간을 위한 봉사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예수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죽여야만이 하는 엄청나게 어려운 길입니다. 그러니 부자가 아무리 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내 놓은 낙타만큼이나 하겠습니까? 낙타는 녹아서 실(絲)이 되야 바늘귀로 들어가는데 말입니다.

마19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이미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이 죽어야 삽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기로 오신 희생양입니다. 예수가 살았다면 나는 아직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하나님이 보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삽니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들은 모두가 예수를 죽인 죄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를 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내 대신 죽이고 죽음을 이기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든지 생명을 내어놓던지 우리는 아무것도아니요, 아무것도 유익되지 못하지만 낙타처럼 자기 몸을 다 녹여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갑니다. 이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제사장은 죄인과 하나님과 중간에서 죄인의 죄를 처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옛사람인 나를 다스리고 나의 죄를 대속해 피흘려 죽고 부활, 승천하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양 되셔서 내 대신 죄를 다 처리해 주셨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중간 역할을 잘못하는 것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의 나와 주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나 사이에서 왕같은 제사장의 역활을 충분히 하고 있습니까?

천주교에서는 예수를 죽여 십자가에 못밖아 놓고 마리아와 교황과 성인들과 착한 행실을 앞세워서 천국가기를 원하고 있지만, 우리는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가시길 원합니다. 예수 이름과 그를 높혀주신 이름을 힘입어 갑니다.

부자가 천국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고 하셨으니 불가능하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낙타처럼 몸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도 돌이켜 우리의 재물(세상을 향한 내 마음, 물질, 유익, 탐심, 정욕, 자아)을 주님의 십자가위에 다 내려 놓고 주님만을 의지하면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성문은 닫쳤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작게 들어가야 합니다. 부자가 무거운 짐(재물)을 잔뜩 지고 좁은 문앞에 서 있을때, 주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시는 것이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낙타의 실이 되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형제자매들을 하나님과 꿰매는 역활을 감당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원합니다. 낙타의 희생이 인간들이 쓰기 좋은 실(絲)이 되어 바늘귀로 들어가서 천막을 만들고 인간들에게 봉사를 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온몸을 다 주신 것같이, 그런 봉사와 사랑과 희생의 마음이 갖추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원합니다.샬롬!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에 대한 3개의 댓글

  1. 본문중에 실로 표현된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아교풀이라고 합니다. 아마 저렇게 해서 아교풀을 만들고 그것을 실처럼 바늘귀에 넣어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정확하지도 않은 주워들은 내용으로 글을 올려서 참으로 죄송합니다.

    참고로, 어떤 학자들은 헬라어에 낙타를 의미하는 단어 카멜로스와 모양과 소리가 아주 유사한 [밧줄]을 뜻하는 단어 카밀로스가 있슴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 표기법은 [The Book of Books]이라는 표제가 붙은 영어 신약판안에 반영되고 있는데, 이 성경은 헨리VIII세가 모든 영국 교구 교회에 영어 성경 사본을 비치하도록, 명령한 지 400주년이 되는 1938년에 발간되었습니다. 그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밧줄이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그리고 유대인의 랍비 문헌 안에는 명백한 불가능을 표현하기 위한 비유로 코끼리가 바늘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나옵니다.(바벨론 탈무드, 소책자 Berakot 55b)
    하지만, 낙타를 밧줄로 대체시키는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언급의 엄중성을 유화시키려는 시도로 밖에 볼 수가 없겠습니다.

    그런 시도중에 또 한 예는, 바늘귀란 은유인데 이 말은 아주 큰 성문을 통하지 않고도 출입할 수 있게 따로 만든 훨씬 작은 문을 가리킨다는 주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고 계셨던 것이 바로 이 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와 같은 작은 출입구가 바늘귀로 불리웠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어쨋든 제가 윗글을 통해 말씀드리고자 했던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마7:14). 그런데 그 중에서도 부자가 가장 힘들다!

    이 댓글에 댓글달기
    1. 가장낮은자님, 님의 열정이 진짜 놀라워요…
      매우 새롭습니다. 그리고 머리속에 한번 각인되면 좀체로 옆을 보기가 쉽지않음에도,,,, 감사합니다.

      이 댓글에 댓글달기
    2. 부족한 자의 글을 통해 성령님이 주시는 말씀만을 받으시길 원합니다.샬롬!

      이 댓글에 댓글달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