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예배 설교 : 그날은 안식일이었더라

바보스쿨 구역예배 말씀나누기는 요한복음 5장의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에 관한 에피소드입니다. 목사들이 본문으로 삼아 설교하는 장, 많이 들으셨지요 ? 때로는 병약하여 대단히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는 교우들을 향해 “이봐라 예수님이 앉은뱅이를 단한마디의 말씀으로 일으키셨다,, 믿쓥니꺄” 의심 걱정 내려놓고 온전하게 철저히 말씀을 믿으면 병고침의 기적이 당신에게서 일어난다고,,, 장구한 세월 많이도 인용된 장입니다.

신유의 은사, 치유의 은사라고 하여 포장을 한 껏 해댑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말만 골라 읽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생각하는,, 그야말로 지가복음을 작성하기에 딱 좋은 장이지요. 실제로 대부분 그렇게 설교하더이다. 그러나, 제가 5장을 아무리 읽어 봐도 예수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이적행위는 예수와 이 책의 저자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더 큰 주제를 말하기 위한 일종의 예제 혹은 샘플이랄까요, 아뭏든 큰 주제 – major topic – 가 아니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읍니다. 죄송합니다, 편의상 요한이 저자라 했읍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는 명백한 문서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장구한 세월, 아니 내 인생 전체에 걸친 기독교 생활 이름하여 신앙생활 가운데 나도 모르게 남이 하는말 줏어 섬겨 머리 속에 완만하게 각인시키고 내 자신의 맑은 이성으로 찬찬히 다시 뒤돌아 보아 과연 그것이 바른 이해인지 헤아려 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다음은 어느 인터넷 성경 사이트에서 캡쳐한 오늘 바보스쿨 설교 본문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성경도 관주 성경이 아니면 거의 비슷한 모양새 일 것입니다. 새로운 장(chapter)이 시작되고 중간 중간에 읽는이로 하여금 쉽게 이해하라고 똥골뱅이로 구분자를 둔 다음, 주제(topic)가 될 만한 단어 몇개를 적어 넣었지요. 우리의 성경을 읽은 눈을 사시로 만들 가능성은 없을까요 ?

사람마다 다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산수를, 과학을, 국어를, 운동을, 사람 사귀기 등등을 유난히 잘하지만 어떤 것에는 약간 충분치 못한,, 사람마다 다 각기 다른 재능이라나요, 다 잘하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국어 시험성적이 다 다르지요, 차이가 있지요. 사람들이 어떤 문장을 읽어 이해하여 그 글이 쓰여진 의도를 알아내는 능력 즉 문장 독해력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독해력이 약간 떨어졌다하여 인격전체가 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이점을 충분히 고려하겠지요. 성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읽어 그 뜻 – 예수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읽는이로 하여금 이해도를 더 높이고자 즉 독자의 완벽한 이해를 돕겠다는 뜻으로 아래 본문처럼 누군가 어떤 내용을 첨가한다면 과연 그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좀 따져 봐야 될 것 같습니다.

○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 아버지와 아들

1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9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 아들과 심판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위 본문에 ○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 아버지와 아들, ○ 아들과 심판 처럼 이렇게 똥골뱅이를 앞에 붙여 특정 부분에 대해 설명을 붙여 놓은 인터넷사이트, 그리고 우리가 들고 다니는 성경에도 그렇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자 ~ 지금 부터 하는 이야기는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아들과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련다 라는 의도에서, 즉 성서기자의 의도는 하나도 반영이 안된 채, 문단을 나누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친절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참 잘했다라고 신학대학교 교수가 감수까지 했겠지요. 성경을 감수한다 ? 참 대단한 우리 민족입니다.

한마디 더 덛붙일까요,, 지금의 성경은 출판사가 대한성서공해에 저작권료를 지불한 후에 책으로 만들며 그 책을 성도가 사면 자동적으로 저작권료가 성서공해로 흘러갑니다.

오호라 !! 이 기맥힌 현실,,,

거저 받은 하나님 말씀을 돈 받고 판다 ??? 근데 말이죠,,, 저작권에 보면 남의 글을 저자의 허락없이 멋대로 바꾸거나 빠뜨리거나 하여 자기이외의 사람에게 인쇄매체나 인터넷 매체에 흘리면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한성서공해 이 작자들은 저자들에게 지들 맘대로 문단 나누고 ○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 아버지와 아들, ○ 아들과 심판들 이런 거 맘대로 넣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는지,, 원작자들의 후손인 유대인 협회에게 저작권 돈은 내고 있기는 하는지…… 사람들에게 공해가 되는 집단이 바로 저들 성서공해입니다.

바로 이 시간 바보스쿨 구역예배시간 우리 예수의 참 뜻을 한번 다시 되새김은 물론 보너스로 성서공해 저들의 사특함을, 저들이 바로 적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확인하시게 됩니다.

1절 부터 8절까지는 글자 그대로입니다. 하여튼, 어떤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은 가끔 아주 가끔 물이 요동치는 때가 있었나 봅니다. 바로 그순간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든 사람에게 혜택이 주어집니다. 어떤 병이 걸렸든지간에 언제 그랬냐 싸-악 나음을 얻는다네요.

5분전까지만 해도 루게릭 병에 몸뚱아리의 모든 근육이 다 얼어 붙어있었는데……

5분전까지도 에이즈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5분만 더 지체히면 자궁외임신중인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다 잃어버릴 판국인데……

일빴따로 들어가기만 하면 어떤 병에 걸렸던지 일순간에 깨끗이 낫게된다……

참으로 신통방통한 연못임에 틀림없습니다. 적어도 2000년전 그 자리에 있던 아무도 돌보는이 없었던 일그러진 사람들의 눈에는요.

만일 여러분의 할아버지께서 루게릭 병 걸린 아들을 둔 친구에게, 강원도 어느 산골짝 몇번 계곡에 모년모월모시에 몸을 담그면 병이 싸-악 낫는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을 옆에서 직접 들었다면,,,, (어쩌자구 할아버지께서 감당도 못할 저런 말씀하시나,,,) 어안이 벙벙해지시겠지요.

루게릭 병은 너무도 가혹한 병입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정신이 맑아,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자각하기 때문이지요. 암이나 이런 병은 고통 때문에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죽음에 이르르지만,,,,,, 이것조차도 싸-악 나아버리니,,,,,,

그래요, 그것은 AD 100년경 유대땅에 떠 돌던 미신이었습니다. 그날도 아픈 병자들은 “일빴따 입수, 0순위 입수-the very first diver”를 위해 연못가에서 단한번의 챈스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어김없이 그런 곳만 골라서 다니셨나 봅니다. 그럴싸한 호텔에서 여유있게 와인을 즐기시는 그림은 자세히 안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5절을 읽기도 전에 오늘 주인공이 38년 앉은뱅이라는 것을 알고있습니다. 38년된 앉은뱅이가 어떻게 0순위 다이버가 되겠는가요, 38년된 앉은뱅이가 변명합니다. 나는 가고싶은데 내 몸이 이래서 남들보다 항상 늦다 그래서 저 물이 요동치는 순간을 남들에게 빼앗겼다 – 이유가 충분히 되고도 남는 변명이지요.

6-9절에, 아프냐 일어나라 그리고 네가 38년 깔고 뭉갰던 자리를 들고 가라 라는 예수의 육성을 기록하면서 저자 요한은 이 한마디를 빼놓지 않습니다.

이날은 안식일이니. 어떤 책에는 그날은 안식일이었더라.

이곳 토론토는 이름이 밷허슫(Bathurst)라는 길이 있는데 유대인들이 몰려 사는 길이지요. 그 길에 위치한 어떤 아파트에 설치된 엘레베이터는 토요일 온종일 모든 버튼에 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무조건 층마다 서고 열리고 닫힙니다.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행위 – 그것조차도 안식일에는 허용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율법대로.

그런데 자리(mat)를 들고 덜렁덜렁 걸어 나갔다 ? 그래서 율법도사들이 묻습니다. 병고친 행위 그 자체로도 율법위반딱지인데 자리(매트:mat)를 들고 가다니 – 즉 물체를 특정 거리 이상 옮겨놓다니, 안식일에,,,,,, 그래서 율법도사들이 딱지를 뗄라고 하니까 이 앉은뱅이가 면피를 하려고 물귀신 작전(finger point)을 구사합니다. (나는 율법을 준수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를 고쳐 준 사람이 자리를 들고 나가라고 해서 나갔다, 내 잘못만은 아니다 라고 답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수 믿고 병고쳤다고 확신하시는 분들 잘 들으세요, 예수께서는 병고침에 대한 그 어떤 반대급부를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낫고 싶으냐 ? 자리를 들고 그냥 가라, 심지어 대부분의 복음서 병고침부분의 기록에는 내가 고쳐주었다는 말을 삼가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 내가 베푼 기적같은 현상을 당당하게 전하여 나를 믿게 하겠다는 너희들 속에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지 나 예수는 잘 알기에 너희를 믿지 못한다 – 지난번 구역예배 말씀이지요.

오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말 한 마디에 38년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신 예수 – 그가 누구인지, 고침을 받은 사람은 율법도사님들 앞에서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얼마 후에 성전뜰에서 자기의 병을 고친이와 마주쳤고 그가 예수라는 사실을 율법도사님들에게 보고하는(report) 장면이 15절이고 16절에 이르러서 (율법도사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되었다고 쓰여있네요.

여러분, 복음서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 입니까 ? 예수로 부터 병고침을 받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 당연히 예수의 이야기이지요. 얼마나 세뇌시켰으면, 구약성경을 한번도 읽어 본 적 없는 애들도 구약은 장차 오실 예수에 관한 책이다 라고 당당히,,,,,, 예수이야기입니다요.

따라서 오늘 이야기는 병고침을 받은 앉은뱅이가 아니라 예수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예수의 이적 베푸시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더 더욱아닙니다. 그 기적이 내게 일어 나게 해달라고 죽자고 기도하는 것은 바로 서커스 공연을 한번 보여주십쇼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 하나만으로 이적이야기는 충분합니다. 나사로는 죽고 사는 문제에 관한 것이고 오늘 앉은뱅이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좀 더 편안한 삶에 관한 문제입니다.

말기 암에 고통을 겪는 환자들이 모인 곳에 가셔서 “나는 40년 동안 앉은뱅이였다 그런데 예수 믿고 이처럼 고침 받았다, 하나님 예수님 은혜다, 여러분도 믿으면 된다” 라고 통성기도 하십시요. 싸대기 맞을 걸요.

“머여 지금, 나는 죽게 생겼는데, 감기 좀 걸린 거 나아가꼬 머가 어쩌고 저째! 나도 일평생 교회댕기고 혔는디 나는 안되고 너는 되고……”

그래요 오늘 앉은뱅이 에피소드의 무게 중심은 바로 박해를 받게되는 예수에게 있습니다. 왜 박해를 받나요 ? 안식일에 병고친 것은 물론이요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한 예수, 이러한 행위를 율법도사님들이 그냥 넘어 갈 것이라고 치부하고 말았을까요 ? 성전 뜰은 그냥 바람쐬러 산책하셨나요 ?

그렇습니다. 유대교를 정면으로 뒤엎어 버리는 말입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더라, 그런데도 예수는 알면서도 병고쳐주는 일을 안식일에 행하였고 또 병고침을 받은 사람에게는 자리를 들고 가라고 까지 말함으로서 율법도사협회에 정면 도전한 셈이지요.

주일성수를 부르짖는 가엾으신 우리 목싼님들, 성전 건축들 다 하셨져 ? 당신들이 매일 묵상한다는 요한복음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는 안식일을 – 주일성수를 정면 부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무어라 하시것소 ? 성전은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부숴버렸고 그 이후로는 성전이 없는데 무어라 하시것소 ?

대답하시기 전에 분명히 알아 두시요, 신약성경은 복음서와 바울의 서신서가 주종목인데 요한복음은 바울 서신들보다는 한참 후대의 것들이고 복음서들 보다 더 한참 뒤에 서점에 나온 것임을. 그러니까 요한복음 저자는 최소한 마태 마가 누가의 세복음서는 완전 정복했을 테고 그 세복음서의 근간이 되었던 오리지날 예수 말씀 어록 – 이름하여 Q문서도 아마 손에 쥐고 있었을 것이요. 그러니 성전 가는날 – 안식일 – 에 전빵 문열은 예수, 당신들의 밥줄인 예수,, 어라 그가 성전을 때려엎질 않나 3일 후에 다때려부시지를 않나, 베데스타에서는 성전 안가고 연못가에서 병자를 고쳐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않고, 어라 성전 율법을 정면으로 뒤 엎으라고 가엾은 앉은뱅이를 끌어 들이지를 않나,,,,,, 주일성수 안하겠다는 예수,,, 어떻게 하시것소?

성경은 답합니다. 박해하게 되었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버렸다고. 누가요, 바로 주일성수를 부르짖는 당신들이 말입니다. 아니 내참, 성전이라매요??? 성전건축했자나여??? 성전…… 예수께서 다 때려엎으실 성전을 지으셨자나여???

오늘 이야기는 38년 병자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가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처절한 장면을, 요한은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앉은뱅이 일으킨 것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과는 비교 불가예요, 나사로는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요, 앉은뱅이는 좀 더 편안한 삶에 관한 문제이므로 비교자체가 않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이적행위만을 기술할 목적이었다면 나사로에 비해 앉은뱅이 이적은 약빨이 약하다 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5장 서반의 앉은뱅이 에피소드는 16절을 기술하기 위한 일종의 글재료였다는 뜻입니다. 글재료라고 해서 예수의 앉은뱅이 일으키신 것은 사실이 아니고 요한의 창작이다라는 뜻은 아니니 거품물지 마시기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그런데 말이지요, 맨 위에 성서공해가 저작권을 허가한 출판사인지 성서공해 자체인지는 모르겠지만 똥골뱅이를 쳐놓고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이러한 친절한 안내 문장은 그런 숨은 큰 뜻은 아랑곳하지않고 단순히 연못가 병자에관한 이야기이다 라고 했네요. 그리고 16절을 지나면 ○아버지와 아들 또 이렇게 안내문을 붙여 놓으니 위와 같이 편집된 성경을 들고 있는 우리의 고명하신 목싸님들은 1-16절까지 한토막내서 신유 치유 설교할 때 단골 소재로 뽑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16절 넘어서 17 18절에 보면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식일을 정면 부정한 예수는 박해하는 율법도사에게, 하나님이 일 하셔서 나도 그리했다 라고 맞받아 치십니다. 그랬더니 하나님하고 맞먹는자라 하여 지금까지는 죽일놈이었지만 이제는 반드시 죽여 없애야 되겠다고 결의에 찬 율법도사님들을 그려 내고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 와 ○아버지와 아들 바로 요 두 친절한 안내판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기에 너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 문장 독해능력이 덜 한 사람들은 그 안내문자으로 인해 참뜻을 못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이것이야말로 사특한 적 그리스도가 아닌가요 ?

오늘 이이야기는 결코 38년 앉은뱅이의 기적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 목적은 예수의 유대교와의 결별선언입니다. 요한은 그것을 단 한줄 – 그날은 안식일이었더라 이렇게 얄밉게 써놓고 맙니다.

24절에서는 우리가 지금껏 가지고 온 신앙의 무게를 한방에 날려 버리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진실로 진실로” 내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으면 영생을 얻었고 심판은 이미 끝난거라네요. 심판날에 주님 앞에 서면 어쩌고 저쩌고 하여 은근히 겁주는 목사, 하늘나라에 가서 상급 받자는 목사의 말은 순전히 개구라이네요. 영어로 볼까요

[KJV]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He that heareth my word, and believeth on him that sent me, hath everlasting life, and shall not come into condemnation; but is passed from death unto life.

[NIV]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예수의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즉 하나님과 예수를 지금(현재형이니까) 믿으면, 영생을 지금(현재형이니까) 얻은 것이고, 앞으로도(미래형이니까) 심판을 안 받을 것이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 가버린(현재완료형이니까)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예수를 가장 안믿는 집단이,,, 누군지 아시지요 ?

다시한번 말씀 드리면 요한복음은 저작연대로 보면 성서의 맨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금 믿으면 영생을 얻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벌써 옮겨간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요한은 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기 도

우리의 삶의 주인되시는 예수여, 우리의 눈을 밝히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무지몽매한 어둠의 상태에서 무엇이 당신의 뜻이고 무엇이 교설가의 뜻인지 분간하지 못하던 38년동안 신앙의 앉은뱅이가 바로 우리였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믿으면 지금 당장 영생을 얻고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겨 갔다고 당신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는 사람들의 우리를 향한 멸시와 천대를, 오늘 묵상한 이 말씀으로 넉넉히 아우를 수있는 담대함과 아량을 우리로 하여금 갖게되기를 소망하나이다. 아멘.

연 보

연말연시를 맞아 street people, 구세군 자선남비, 고아원, 병원 등등 연말특수를 기다리는 손길을 향하여 (교회에 헌금하면 있지도 않은 성전짓느라 빌린 은행돈 모기지 이자상환으로 다 날라갑니다.)

“구역예배 설교 : 그날은 안식일이었더라”에 대한 2개의 댓글

  1. Q문서 : 위 글 중에 쓰여진 Q문서라는 말에 대해서 부연설명하겠씁니다. Q는 독일어 Quelle의 첫글자를 따왔습니다. 그 뜻은, 어디서 부터 출발하다는 뜻이라고 사전에 있네요. 그러니까 책에 관한 것이라면 원전 혹은 기원 출처 이런 뚯입니다. 영문 서적에는 Q document 로 표현하네요.

    세 복음서, 이름하여 공관복음서를 읽다보면 뭔가 찝찝함을 한번은 느끼시지 않으셨나요? 예를 들면 예수에 관련된 어떤 한 사건을 가지고 책마다 약간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서 말입니다. 특히 예수의 3년 시간 동안 행동반경을 추적해보노라면 세복음서는 예수사건들이 시간적으로 일치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잘 읽어 보세요.

    이에 학자들은, 아마 문헌비평학자들일 겁니다, 마가복음이 맨먼저 쓰여졌고 그리고 마태 누가복음 저자가 마가복음을 참고로 쓰여졌을 것이다 라고 추측했었답니다. 이렇게 해도 의문이 풀리지 않으니까, 그게 아니고 원래 예수께서 남기신 말씀을 잘 기록해둔 책이 있었고 그것을 마가 마태 누가복음 저자들이 응용 베낀것이라고 중간 결론을 내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후자가 더 사실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사실 저 역시 진본 예수 어록이 없다는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세 복음서의 예수사건들과 말씀을 기초로 거꾸로 “있었어야만 한 진본 예수 말씀 어록”을 구성했습니다. 문서 즉 Document를 만들었다 이말씀이지요. 그리고 Quelle Document 줄여서 Q Document 이름지었답니다.

    복음서는 대체로, 저자가 사건을 자신의 관점에서 나열해 나갑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I will tell you that)” 라는 말 뒤에 예수의 진짜 음성이 나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나그함마디 도마복음서가 발견되고, 그 책의 내용과 Q document가 80%(?) 이상 일치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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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올만에 방문합니다. 그리고 나누신 말씀 카페에 옮겨 갑니다.
    수고에 깊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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