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의 굴혈 – 구역예배 11/18

오늘 바보스쿨 순두게의 네번째 구역예배 설교의 본문말씀은 마태복음 21장 12절 부터 18절에 이르는 소위 예수께서 행하신 성전정화 Cleansing of the Temple 에 관한 내용입니다.

면허쯩을 소지한 헤아릴 수 많은 목사들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예수 자신을 죽음으로 내 몬 직접적인 원인중의 하나라고 말입니다. 그때마다 하도 거룩하게 설명을 하셔서 그렇지 쬐끔만 덜 거룩하게 설명을 해볼까요,,

성전을 정화했다,,,

하나님께서 자기 집이 좀 지저분하다는 것을 아시고 진공청소기를 좀 돌리시고 박테리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소독약을 좀 뿌리셨다….

이말씀인데,, 그 정도가지고 굳이 성경에 기록을, 그것도 4 복음서에 모두 기록해놓으셨으니,,,,,, 저는 약간은 이해가 안가는 예수의 기행이라면 기행이랄까로 부터 의문을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2-13절

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12Jesus entered the temple area and drove out all who were buying and selling there.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 changers and the benches of those selling doves. 13“It is written,” he said to them, “‘My hous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but you are making it a ‘den of robbers.'”

 

필자는 성경에 기록된 마태의 기록에서 왜 예수께서 화를 내어야 했는지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마태복음만 가지고서는 알아내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둘기 장사와 환전상 좌판을 뒤엎으셨는데 그들의 어떠한 행동이 예수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중동지역과 유럽 아프리카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 한번 해보는 것이 오늘날의 용어로 치면 성지순례가 평생의 꿈이었습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좀 덜 절실했겠지만요.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성전 – Temple 이었습니다.

성전이 갖는 상징성은 사실 유대교의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갈 때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법궤를 놔두고 어떻게 고향을 떠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이 없는 바벨론,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까? 자기들의 뿌리, 즉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었지요.

그런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경배를 하고자 하려면 율법서에 기록된 대로 닭잡고 소잡고 돼지잡고 목아지 비틀어 피뿌리고 해야할 터인데,,, 만일 그런 제물들을 그 먼 곳에서 부터 가지고 온다면 운임이 더 들테고,, 하나님께서는 양한마리만 받으시면 OK이시지만 천리길도 넘는 산길 뱃길을 가지고 가야만 하는 나는 사실상 양 세마리 그 이상가는 비용을 써야하는 셈,,,, 그러니 돈만 가지고 맨몸으로 예루살렘 근처에 가서 사서 바치자,,,, 오-호!! 이 얼마나 현명한 방법입니까 ?

그래서 성전뜰에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나 봅니다. 원스탑서비스까지 이르려면 환전상도 있어야 했겠지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지금 그들이 펼치고 있던 좌판을 다 엎어버립니다.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마태가 사용한 강도의 굴혈이라는 어휘, 아마 이 말 한마디에 상도에 어긋난 장사꾼들이 득실댈 것이라는 편견에 의해 굴절된 성전의 모습을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떠올립니다.

우리는 성전에 관한 부정적인 의미를 표현하는 말이나 이미지를 떠 올리면 바로 강도의 굴혈, 강도의 소굴을 떠 올립니다, 편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도의 굴혈,, 아 — ! 또 오늘 성전에 대해 부정적인 말만 하겠구나, 아 — ! 헌금 야그 또하겠구나 하는 편견이 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성경을 진짜 꼼꼼히 잘 읽어야 함을 또 한번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본문말씀 위 두 구절을 잘 읽어보면 거기 있던 장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묘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택도 없이 높은 이윤을 남겨 소비자 고발을 당했다거나 저울을 속였다거나 환율이 터무니 없이 낮았다거나 하는 반칙행위가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묘사된 것은 화가 잔뜩 나 있는 예수의 모습 뿐입니다.

그런 모습 속에서 예수의 한마디를 마태는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강도의 굴혈이라 – a den of robbers,,,,,, 강도짓 한사람들에 관해서는 하나도 안써놓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니까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무조건 잘 못 – 죄인 – 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밖에는 하지 못하는 우리의 새뇌(세뇌된 뇌를 너무 오래동안 치유하지 않고 방치하면 새의 뇌가 즉 새뇌가 됩니다)는 거기까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과연 그러한 상황, 즉 장사꾼이 들끓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그들이 아니면 성전에 오는 백성들이 더 큰 곤경과 지출하지 않아도 될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과 진짜 큰 맘먹고 평생에 한번 예루살렘에 오는 자신의 골육들에 대해 그렇게 원칙만 내세우는 이름하여 고등학생 표현을 빌면 “꼰대”여야만 하는가입니다.

강도의 굴혈 – 이 한마디에 앞뒤 정황 볼것도 없이 무조건 성전은 때려 엎어야 할 대상으로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 각인시킵니다. 그래서 예수를 성전안에서의 공정거래위원회 소속 단속반원 정도로 또 한번 격하시키고 맙니다. 예레미야 7장에 오늘 본문의 마태가 사용한 어휘 강도의 굴혈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읽으신 구약 성경입니다.

1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4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5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6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7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8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9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10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11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1절에 도둑의 소굴이라고 씌여 있는 데 영어로는 a den of robbers 라고 번역되어 오늘 본문말씀의 마태복음의 강도의 굴혈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의 도둑의 소굴은 강도의 굴혈로 치환된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글 번역이 너무 거룩하게 느껴집니다. 성전은 과부 고아 병자 그리고 약자 – 그러니까 쫒기는자들에게는 더 할 나위없는 좋은 도피처였지요.

그것은 어느정도 율법에서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인도적이고 비정상적인 주인의 집을 목숨을 보전하고자 도망나와 성전으로 피해들어가는 노예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됩니다. 바로 이러한 점을 간파한 일반 잡범죄꾼들이 성전을 악용했습니다.

성전에 숨어들어 가서 훌륭한 연기로 자신의 잡범으로서의 모습을 감추려 했던 모습말입니다. 몇해전, 한국 제일의 조폭 두목이 교회에 숨어들어 신학교에 다니고 목사 안수까지, 또한 한 젊은이를 사상범으로 몰아 고문 끝에 숨지게한 경찰관이 어느새 목사로 나돌아 다닙니다. 이러한 현상이 예레미야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한글 성경이라도 빌미가 있지만 저는 영어로 먼저 읽은 후 한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 뜻이 보입니다.

예레미야 7장 1-11 영한 대조 번역
This is the word that came to Jeremiah from the LORD:
1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말씀이다:
Stand at the gate of the LORD’S house and there proclaim this message: Hear the word of the LORD, all you people of Judah who come through these gates to worship the LORD.
2절
하나님의 집 문앞에 서있어라. 그리고 이렇게 선포해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This is what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Israel, says: Reform your ways and your actions, and I will let you live in this place.
3절
이스라엘의, 전능자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의 행동과 생활양식을 바꾸면(개혁하면) 너희들이 이 장소에(성전에) 사는 것을 내가 허락하겠다 고 말씀하신다.
Do not trust in deceptive words and say, “This is the temple of the LORD, the temple of the LORD, the temple of the LORD!”
4절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의 집이다 하나님의 집이다” 라는 말로 혹하게 하지 말고 누가 말하거는 듣지도 마라
If you really change your ways and your actions and deal with each other justly,
5절
만일 너의 삶의 방식과 행동양식을 바꾸고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가지면,
if you do not oppress the alien, the fatherless or the widow and do not shed innocent blood in this place, and if you do not follow other gods to your own harm,
6절
그리고 너희가 이방인 고아 과부를 압제하지 않으며 이곳에서 죄없는 피를 흘리지 않으며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아 네게 해롭게 하지 않으면
then I will let you live in this place, in the land I gave your forefathers for ever and ever.
7절
그렇다면 너희 조상에게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던 땅의 이곳에 너희가 살도록 하겠다.
But look, you are trusting in deceptive words that are worthless.
8절
그러나, 봐라, 너희는 지금 사기의 말과 가치없는 말들을 믿고 있다.
Will you steal and murder, commit adultery and perjury, burn incense to Baal and follow other gods you have not known, and then come and stand before me in this house, which bears my Name, and say, “We are safe”–safe to do all these detestable things?
9-10절
(9절10절은 한 문장입니다.) 도둑질 살인 음란 거짓증언 우상숭배 결국에 가서는 내 이름이 걸린 내집 앞에 서서 이런 추악한 일을 하고도 우리는 성전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 안전하다 계속 그렇게 말할거냐 ? (예를 들어 피해자가 성전에 숨어있는 가해자를 찾아와서 복수를 하고자 하는 경우, 성전안의 숨은 가해자는 여기는 성전이다 여기는 성전이다 거룩한 성전이다를 연발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경우를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Has this house, which bears my Name, become a den of robbers to you? But I have been watching! declares the LORD.
11절
 
성전으로 피하면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도들이 모여들어 그 결과 이 집이 지금껏 강도들의 굴혈이 되어있지 않느냐? 내가 계속 지켜 보고 있었다.

 

자 ~ 성전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피해 들어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하면서 성전에서 행해지는 여러 행사에 열심히 참석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성도와 똑 같습니다.

아니지요,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했다고나 할까요, 범죄자가 뉘우치니 더 그럴싸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자로서의 행동양식이나 생활은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신들의 죄악을 감춰 놓은 채 성전 행사에 열심히 참여함으로서 성전을 철저히 이용만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번득이는 날카로움이 서늘합니다.

그래서 성전이 강도들이 들끓는 소굴로 즉 범죄자들의 좋은 피난처가 되었다고, 예레미야는 개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생활패턴과 행동을 바꾸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건마는 그들의 생활은 하나도 변한 것 없이 다만 성전은 그들의 신변만을 보장하는 들러리 신용평가회사에 불과하다는 예레미야의 통찰입니다.

다시 마태복음으로 가십시다. 예수께서 모든 장사꾼을 내쫓으시고 환전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성전에서 장사하던 사람들, 이 사람들은 예레미야 시절 성전에 숨어 들어 도움을 청했던 쫒기는 범죄자들과는, 비록 상식이하의 상도덕으로 무장하긴 했어도, 그 격이 다릅니다. 이들은 적어도 형사범은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먼 곳에서 경배하러 온 동족에게 큰 편리함을 제공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사실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또 한편, 저울을 속이고 순례객을 등치는 악덕 상인들로 들끓고 일반 저자거리 시장바닥 보다 못한 상거래와 그러한 썩은 비즈니스시스템과 성전관리인과 제사장들이 결탁한 검은 커넥션을 예수께서 모르셨을리가 없습니다.

그저 성전에 만연하던 불공정 거래와 그로 인한 부패한 성전 시스템만을 겨냥한 예수의 때려엎음일까 ?

수백년동안 면면히 이어온 제사장과 성전관리인들의 돈밥통 철밥통을, 갈릴리 촌구석에서 병자 몇명 고치고 귀신 몇마리 쫓아낸 청년이 끊어 낼 수있다고 갑자기 깜짝 놀라 예수를 과대평가한 나머지 겁을 잔뜩 집어먹고 가능하면 가장 빠른 시간내에 죽이려 들었을까 ?

그를 십자가에 참혹하게 죽여버리기에는 죄질이 너무 가볍습니다.

그럼에도 그를 죽이려 했음은 분명히 그들의 관용을 무너뜨린 그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도바울은 이교도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을 만나서 바울과 그가 남긴 서신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이러한 충고를 잊지 않습니다.

Paul’s epistles, but read them very carefully, very, some strange…… 사전적인 뜻만 보면 참 좋게 들립니다. “매우 조심스럽게 읽어야한다, 가끔은 낯선것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이교도인 나로 하여금 기분이 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련된 언어를 사용하여 얼굴 붉히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필자에게 전하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다!!” 입니다. 이교도인 바울이 유대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회당에서 강론을 펼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사람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너그러운(?) 이들이 예수를 바로 죽이려 마음 먹은 이유는, 성전 그 자체를 우상으로 바라보는 예수로 부터 바울의 눈을 멀게 했던 강렬한 빛을 본것은 아닐까 ?

수백년동안 그렇게 해왔던 하나님께 대한 예배, 경배 방법을 이제는 바꾸어야할 때가 되었다, 이제 그만 구태의연한 방법을 버려라 내가 생명이고 길(way, 예레미야말대로라면 의당 해야하는 일)이다, 새로운 길인 나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자, 그렇기 위해서는 성전에 갇힌 무늬만 하나님 경배자의 모습, 즉 굴혈 속에 갇힌 강도의 모습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백성들 한사람 한사람 가운데 계시다, 내가 이제 너희들이 앞으로 해야 할 모든 제물이 될 터이다, 너희들은 이제 새로운 삶의 방식에 따라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을 잔치하듯이 살아라,,,

예수의 분노가 뿜어내는 강렬한 메세지입니다.

성전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먼저냐 닭팔고 양팔고 새파는게 먼저냐 ?

다시말해,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성전은, 교회는 그저 죄인들이(나도 예외없이 죄인이다) 드나들면서 나는 그래도 교인인데 그리고 때되면 제물도 바치고 하는데 그러면서 구원받은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뻐기면서 청지기의 귀중한 삶의 한락 한자락을 축내는 나태함을 정당화하는 한낱 건물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예수의 우리를 향한 분노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성전은, 저울을 속이고 순례객을 등치는 악덕 상인들로 들끓고 일반 저자거리 시장바닥 보다 못한 상거래와 그러한 썩은 비즈니스시스템과 성전관리인과 제사장들이 결탁한 검은 커넥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시선은 우리의 그것을 넘고 있습니다. 그렇게 썩어빠진 성전 아니 성전시스템에 그저 나타나기만 하면 즉 성전 문턱만 밟기만 하는 성전등록신도들에 대한 예수의 분노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강도아닙니까 ?

우리가 교회를 강도들이 들끓는 굴혈로 만든 것은 아닙니까 ?

교회라는 특정 건물에 주기적으로 들락 날락하면서 돈 몇 푼 들고 가서 나는 예물도 했다 구원받았다 한편에서는 그것의 달콤함을 즐기는 교역자들의 탐욕에 알게 모르게 나자신이 검은 커넥션으로 묶여있음을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려고 하지도 않는 무지함과 나태함의 소유자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우리는 굴혈을 만든 사람이며 그 굴혈에 갇혀있는 강도일 뿐이라는 예수의 준엄한 분노가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까 ?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께서, 지금 그가 자신의 목숨을 던질 만큼 사랑하는 나와 여러분에게 화를 내고 계십니다.

기도: 내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여, 내가 미련하여 당신께서 나를 향해 화를 내시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 비둘기 파는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살아 온 우리들입니다. 시간되면 교회당에 돈 몇푼 들고 나아오면 그것으로 당신이 나를 보호한다는 착각에 빠져,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부터 위안을 삼으며 살아온 미련한 인생을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당신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성전이 결코 나의 나태함과 무지함의 핑계에 대한 용서가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여, 나는 깨어 있어 당신의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내게 잠들 수 없는 정열이 끊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나를 구원하신 예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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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의 굴혈 – 구역예배 11/18”에 대한 3개의 댓글

  1. 정신이 번쩍나는 설교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성전을 이권으로 생각한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질책으로만 알았던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교회를 강도의 굴혈로 만든 장본인이 나라는 사실이 이렇게 선명하게 다가 오는군요.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가 바로 나 자신임을 다시한번 절감합니다.

    말씀에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한번 생각하게 하는 설교입니다. 좋은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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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마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너무 경직된것 아닐까요? 우리의 후대들은 쉽게 번역된 성경으로 머리속이 가득해질 테니 그들은 우리와는 다르겠지요. 어떤 한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쓰고 읽을것입니다. 마음이 아팠다, 슬픔이 더 했다, 속이 많이 상했다, 눈물이 난다, 슬프다, 슬퍼보인다,,,,,, 이러한 사람의 슬픈 감정을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놓습니다.
      “슬프도소이다”
      “나는 너희가 내가 슬프지 않다는 것을 모르기를 웒치 아니하노니” – 번역이란 또 하나의 창작의 절정입니다.
      그래서 한글로 읽고 반드시 영어성경을 확인하면, 말씀하신대로 나를 감싸고 있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한꺼풀씩 보입니다. 아주 더디게요……
      댓글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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