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 – 구역예배 11/08 2011

평신도가 하는 바보스쿨의 구역예배 설교 오늘은 미가서 말씀을 같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읽으시고서 격려의 차원에서도 한말씀 남기실 법한데 모두들 그냥 가시네요. 내용은 괜챦은데… 그렇게 생각되시면 아멘 한단어라도 남겨주시기를. 맘에 안드시면 왜 안드시는지……

***

누가복음 2장1절에 로마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Augustus) 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하는 호적명령을 내리는 기사가있습니다. 황제의 명령인지라 마리아와 요셉도 별 수 없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의 베들레헴으로 떠난다는 누가의 진술이 기록되어 있음을 저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아십니다. 호적하러 베들레헴에 갔을 때는 마리아는 이미 임신상태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복음을 좀 더 거꾸로 올라가 1장쪽에 보면, 이번엔 세례요한의 탄생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한 때(once upon a time) 포주였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나이가 들어 늦둥이를 갖게됩니다. 남편은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입니다. 그가 늙으막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를 만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사가랴에게 자신의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제사장인 사갸라 역시 아브라함처럼 믿지 않고 건방떨다가 1년이상을 벙어리 빠떼루 판정을 받았다는 이야기.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고 요한이라 이름을 정한 후에서야 벙어리의 페널티가 해제되고 자신의 아들 요한의 삶을 예언하면서 사가랴는 7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나니”

여기서 제사장 사가랴가 지목한 언약은 그냥 아무생각 없이 할 말 없어서 내뱉은, 혹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그러나 아무나 할수없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 미가서에서의 하나님의 약속 – 언약을 지목한 것입니다. 이처럼 미가서는, 우리 신앙의 전배들이 예수사건을 구성해나가는 길목 여러 곳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한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 시나고그(회당)에서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출판물을보면, 해가 바뀐다거나 주요 절기를 맞는 에디션일 경우 미가서의 말씀을 인용해 놓고 그에 대한 랍비의 일종의 코멘트가 헤드라인에 있는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영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유대인들을 만나면 미가서에 대해 자주 묻곤 했지요. 미가서를 보는 일반 유대인들의 생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미가서를 말한다면? 대충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요. 그들은 한결 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For the better place (when we may come back to this world,,,,,, )

만약 우리가 죽고 다시 태어나 이 세상을 또 다시 산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이어야 할것이다 – 이것이 미가서를 바라보는그들의 안목입니다.

오늘은 찬송가 대신에,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마이클 잭슨이 만든 노래 Heal The World라는 노래 한곡을 감상하신 후에 계속 하십시다. 가사 중에 귀에 띄이는 것은,

Heal the world, make it better place for you and me and entire human race,,,

미가서를 읽어 가노라면 내용이 너무도 삭막함을 알 수 있습니다. 평신도인 우리에게 느껴지는 그 삭막함의 정도가 목사들이 읽고 느끼는 그것보다는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입만 열면 성경말씀, 성경말씀 말씀하면서도 자기들은 잘 안읽는 읽어도 저 좋은 말씀만 골라 읽는,,, 성경책을 절대화해 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평신도들을 구워 삶아 죄책감만 잔뜩씌워 말 잘듣는 평신도를 만들 목적으로만 절대화하는 그들의 몽매함에 연민의 정이 들 뿐입니다.

미가는 위기와 격변의 세월 한 복판을 살다간 선지자입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아하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미가선지자가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은 물론 심지어 배교현장을 눈 앞에서 목도하면서 영적 무기력에 절규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닙니다.

유다왕 아하스 때, 이스라엘 왕 르말랴와 아람왕 르신의 동맹군에게 유다군이 포위당하여 위험에 빠집니다. 아람왕은 엘랏이라는동네를 유다로 부터 탈환하여 그곳에 살고있던 유대인들을 추방해 버렸습니다. 이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아하스 왕이 당시의 떠오르는중동의 강자 앗수르에게 사신을 보내 다음처럼 말합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So Ahaz sent messengers to Tiglathpileser king of Assyria, saying, I am thy servant and thy son: come up, and save me out of the hand of the king of Syria, and out of the hand of the king of Israel, which rise up against me.

아하스 왕은 “내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 와) 당신의 아들이다. 당신 신하이다” 라고 아주 노골적인 굴욕의 표현을 편지에 썼다고 성경은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목숨이 얼마나 위태로웠기에…… 사신이 아하스왕의 편지한장 달랑 들고 가서 “도와줍쑈” 했겠습니까?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냈습니다.

앗수르왕은 그 청을 들어 아람(다메섹)으로 쳐 들어가 아람왕을 죽임으로서 예물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 아하스 왕이 다메섹으로 가서 디글랏 빌레셀왕을 만납니다. 고맙다고 말하러 갔겟지요. 그리고 한가지 일을 더 합니다. 거기에 있던 제단의 생김새와 제단에서 행해지던 여러 절차를 “그려서” 본국의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냅니다. 이 그림을 본 우리야는 그대로 그 제단과 절차를 재현해 냈고 아하스왕이 다메섹에서 귀국했을 때 왕이 그 제단에서 새로운 절차에 따라 제사를 드립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유기적인 진정한 우상숭배 교과서인가를 열왕기 기자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을 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였던 주기철목사는 자신의 영혼을 무너뜨리는 신사참배의 배교를 자신의 목숨과 미련없이 바꾸어 한국의 시궁창 교계에 독야청청 아름다운 한송이백합으로 피어나지만, 한경직이는 미련없이 신사에 참배함으로서 내가 일본 천황 당신아들이라는 아하스의 굴복을 그대로 따른 영원한 사기꾼 선지자 하나냐로 남게됩니다. 제가 이 늙은 것을 끝도 없이 기회만 되면 들추어 내는 이유는 우리의 자라나는 후손에게 반드시 알려 배교의 최전방에 섰던 자가 우리의 참목자로 둔갑하는 일만은 결단코 막아야 함입니다. 신사참배 해도됩니다. 자기만 하면 됩니다. 그걸 보고 다른 영혼들까지도 그것이 진실인 양 몰고갔기에 우리가 그것을 충분히 있을 수 있는일로 상황논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와 똑같아집니다. 이사야의 미혹하는자, 인도하는 자, 인도당하는 자 그리고 멸망당하는 자에 대한 선포,, 어찌 우리가 콩을 팥이라고 말하리요…)

미가 선지자는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2장 1절에 “그들이 잠자기전에 침상에서 죄짓는 일만 생각하다가 곯아 떨어져 잠들며, 날이 밝기 무섭게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손에 힘이 있어서 그렇답니다. 열왕기하를 읽음으로서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인지한다면 여기서의 그들이란 손에 힘이 있는 그들이란, 정치계에서는 아하스요 종교계에서는 제사장 우리야를 정점으로 하는 종교지도자집단임을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독해력정도면 알 수 있습니다.

미가만 그리한 것은 아닙니다. 미가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또다른 선지자 이사야는 이 시절을 향하여 이사야 9장 11-17절에서 다음처럼 진술합니다.

 

11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들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의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12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13그리하여도 그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이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14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와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15그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그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16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 17이 백성이 모두 경건하지 아니하며 악을 행하며 모든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장정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여러분, 15절 16절을 읽어 보십시다. 거짖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를 그냥 놔두고 그가 인도 하는 것을 그냥 놔두면 인도당하는 우리들은 자동으로 멸망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말은 다시말해 우리는 아니라고 말해야 할 때 아니라고 말을 해야한다는 뜻 아닌가요. 멸망으로 이끌고 들어 가는 인도하는 자를, 인도당할 때 가만히 있다가 인도당하여 마침내 멸망하고 나서 원망 후회하면 그 멸망은 인도 당한 너희 책임이 아니니까 무효로 해주겠다 이런 말씀은 없습니다.

주전 705년 써나크리입 (성경에는 산헤립 – Sennacherib)이 왕에 올랐을 때, 유다의 히스기야왕과 많은 주변의 군소국가들이 앗수르가 지워준 멍에를 꺽어 버리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산헤립은 왕이된 후 앗수르의 내정을 공고히 하여 내부단속을 확실하게 한 후 남쪽으로 내려가 반란국가들을 잠재웁니다. 주전 701년 마침내 유다로 내려가서 유다군을 궤멸시키고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모조리 복속시킨 후, 은 300달란트 금 30달란트를, 오늘날로 치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한국 정부에 떠넘기는 것과 똑같이 히스기야 왕에게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

당시 산헤립이 궁극적으로 노린 것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진군해 들어가는 경로가 미가서 1장 10절 부터 15절에 이르기 까지 대강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많은 유다의 성읍이름이 나오는 것을 지도를 따라가 보면 산헤립이 이끄는점령군의 이동경로를 알 수 있습니다.

미가가 살았던 모레셋, 가드, 가드모레셋는 아마 산헤립 군대의 이동경로 상에 위치했었을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면 여느 산간지역의 유다 마을 백성들 보다 미가의 본고장 백성들이 당하는 피해는 더 컸을 것입니다. 그는 유다 백성들의 참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는, 아하스나 히스기야의 배교행위와 우상숭배로 부터 그 원인을 찾았던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냥 보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직접 말로서 그들 왕실과 제사장집단에게 깨우려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미가서 2장 6절,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KJV: Prophesy ye not, say they to them that prophesy: they shall not prophesy to them, that they shall not take shame.
NIV: “Do not prophesy,” their prophets say. “Do not prophesy about these things; disgrace will not overtake us.”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이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됩니다. 영어로 보면 아주 쉽게 쓰여 있네요.

거짖 선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소위 선지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아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해 예언할 필요 없어, 당신들이 예언하는 그런 나쁜일들은 일어 나지 않을 테니까..”

간단히 말하면, 미가와 같은 참 된 선지자들이 뭐라고 말만 하면,

“입 닥쳐, 그런일은 너나 걱정하시지”

오늘날 바보스쿨을 방문하신 젊쟌으신, 믿음좋으신, 평생을 나는 기독교도로 예수추종자로 살아왔다고 부르짖는 분들의 바보스쿨러들을 향한 마음 밭과,, 글쎄요 무엇이 다를까요…… 그때 미가와 같은 선지자들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요, 성경은 누구의 편입니까?
성경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까?

하냐나의 예언을 기록했습니까?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록했습니까?

미가는, 엄청난 독설가였지만 또 한편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미가는 동족의 아픔을, 아니 내 이웃의 아픔을 그냥지나치지 않은 사람입니다. 미가는 고아와 과부를 경히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럴 때 순종이라는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있지도 않은 성전 짓겠다고 목사 설레발 마구 칠 때 하는 말,

“순종하는 마음으로 성전건축헌금” 에서의 순종은 목사의 말에 순종해라이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내 아버지여호와께서는 성전을 단 한번 허락하셨고 그 마저도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기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때려 부숴버리셨으리니……

하나님께서 있지도 않은 성전(Temple, church)에 대해, “성전을 건축하련다, 돈 가지고 와라, 모자라면 은행가서 이자 내고 빌려서 지어라” 라고 할 정도의 초짜배기 사기범만도 못한 술수를 쓰시는 분이냐? 사기꾼 초범들도 그 보다는 단수가 높아요 높아…..

8절에서 우리는 눌리고 약한 자들을 향한 미가의 사랑을 봅니다.

“근래에 내 백성이 원수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 이말은 요즈음은 도대체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모르겠다,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그렇게 맘편히 집으로 돌아 가는사람들 뒤통수를 패버리며 그들로 부터 너희가 겉옷을 빼앗았다는 뜻입니다. 즉, 정말로 무찔러야 할 적은 앗수르 군인인데 힘은 강하고, 대신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을 무슨 앗수르 군인 대하듯이 보호는 커녕 마구 수탈 착취하는 현 정부와 종교집단을 빗대는 미가의 멋들어진 표현입니다. 그렇게 수탈해다가 쌓아 두었던 금은 보화를 다 앗수르 왕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물론 성전에 있던것들까지도 다 퍼주어버렸으니,,

9절에 이르러, 부녀들을 내 팽개쳐 버리고 그들의 어린 자녀들로 부터 그들이 의당 누려야 할 하나님의 복을 빼앗았다, 그리하여10절에 이르면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장이 날아듭니다.

일어나 이곳을 떠날지어다, 이곳은 너희의 안식처가 아니고 멸망받아 마땅한 처소가 되었다는 말씀.

오늘날, 서울의 아니 세계 최대의 교회를 자랑하던 순복음 교회 조용기회장님과 그 가 구성원들의 작태를, 자식이 어머니에게 고소장을 띄워 재판정으로 불러내는 일을, 몇십억 몇백억을 단한번의 말한마디에 이리 메치고 저리 메치는 것을 보면서, 깨어있던 아니면 광신도이던 기독교도가 느꼈을 황무함을 미가는 2700년전에 이미 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미가서는 총 7장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4장에서 맥이 절단되는 듯합니다. 잘 읽어 보세요. 학자들은 말하기를, 미가서는 바로3장 까지는 미가선지자가 기록했고 그후의 기록은 누군가가 후대에 새로 집어 넣었다고 말합니다. 이런말 들으시면, “아니,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안바뀐다는데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 고 되물으시는 분들 께 필자가 드릴 말씀이라면, “신약복음서를 잘 읽어 보시면 예수의 정확한 태어난 해 조차도 복음서마다 약간다르게 기술 되어있고 그것을 지금까지 평생 아무런 의문도 없이 읽고 믿었던 자신을 설명해주십소사” 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미가서를 3장까지만 읽기로 했습니다. 4장 부터는 미가 후서로 명명해 남겨두면서요.

미가 당시의 백성들은 여전히 여호와를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삶의 변화가 없음에 그는 안타까워 했습니다. 즉, 성전문턱만 밟는 – 오늘 날로 치면 교회당 가서 열심히 이벤트만 참석해대는 – 즉, “의식” 절차 성실 준수 오늘날로 치면 아무생각없이 일요일 오전 양복입고 교회당 가고 오는 이름하여 “주일성수” 딱 그 정도의 수준이었음을 미가는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종되고 예수는 교회당 주차장 밖에서 울고 계시는데도, 나에게 꼴을 먹일 참 목자는 문 밖에 울고 계시는데,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합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합니다.

미가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오늘 필자는, 설교 본문 말씀을 맨 뒤에 위치시킵니다. 다시한번 찬찬히 읽으면서 2700년전 산헤립군대의 말발굽 아래에서 허덕이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가슴으로 그려 보십시다. 살갗이 산 채로 벗겨지고 머리가 잘려져 몸과 함께 장 담가지던 참혹함속에서 종교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누렸던 삶의 방식을 그려보십시다.

위에서 같이 나눈 말씀과 아울러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교회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믿음생활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고 있는, 아니 나 자신의 생활을 끌어가고 있는 어떤 사탄의 권세를 “미가”의 타는 가슴으로 보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구역예배 기도는 오늘 본문 말씀 미가서 3장을 찬찬히 읽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1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2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3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4그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가 악했던 만큼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시리라 5내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어둠을 만나리니 점 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7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릴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아니하심이거니와 8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9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 – 구역예배 11/08 2011”에 대한 6개의 댓글

  1. 사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 .

    목사가 하나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혹함을 받는 성도들이 그를 하나님의 위치에 올려 놓고 거짓 선지자노릇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용하여 성도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나님의 말씀처럼 꾸며되지요. 잘된다. 복받는다. 성공한다. 등등
    또한 자기의 욕심을 “하나님을 위하여” 로 포장하는게 특기입니다.

    귀있는 자는 바보들의 외침에 너무 늦기전에 한번쯤 귀 기울이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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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름하여 기복신앙… 나만 잘되면 모든게 그만,, 도박판에서 따구배짱,,,
      댓글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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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주 친근한 언어로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해 주니 참 좋습니다^^* 처음엔 음악을 키지 않고 글만 읽었었는데…마이클 노래까지 나오네요^^

    한가지 사족을 말하자면…물론 그 이도를 이해하곤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음악과 함게 어우러니니 본문 설교의 의미가 반감 됩니다.

    집중해야 하는데 음악 소리에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다는 것이지요 ^^;

    가능하면 말씀을 나눌 때 심지어 찬송이나 복음송이라도 뒤 섞지않았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을 바래 봅니다^^

    물론 다른 분들이 괜찮다면 상관 없겟지만요

    너무 좋은 설교라서 딴지좀 걸어 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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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씀 주신 대로 그렇게 해두었습니다.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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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Re》사랑그리고편지 님 ,
    적시의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일단 노래 꺼 놓고,, 제가 다시 몇번을 켜놓고 읽어 보고 끄고 읽어 보고 했지요… 저는 이미 내용을 다 알지만, 읽으시는 분들은 다 읽을 때까지 계속 집중해야 하는데,, 에구구,,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미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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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혹시 언짢아 하실까 걱정햇는데 좋게 이해해 주시니 제가 미안해 집니다. 저는 컴 사용할때 주로 문서 이 집중하기에 가능하면 동영상이나 음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아예 볼륨을 끄고 컴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사실 음악 무지 좋아합니다. 들을 땓 음악에 빠지는게 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공연히 찬물 끼얹지나 않았을까 했답니다.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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